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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르 연극(창작), [테마] 혼자 보기 좋은 공연, [테마] 퇴근 후 직장인들, [추가분류] 앵콜
공연일자 2013-04-18(목) ~ 2013-04-21(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시간 평일 8시 토요일 3시 / 7시 일요일 3시
관람등급 만 7세 이상
출연자 김성모, 신동길, 강경동, 나승재, 정재은, 정해연, 김미림, 안훈, 신민재, 황위재, 김찬미, 윤덕용, 권소랑, 김선호, 박민경, 김자영, 하솔림, 문성주, 장우용, 윤미정, 박상은, 신은지, 한재용, 권오승
티켓가격 30,000원
러닝타임 110분
제작 극단창세
공연문의 010 5473 5387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C-Genesis
할인정보 프리뷰 4월18일수 8시공연 전석 10,000원 / 학생(중,고,대) 10,000원 / 노약자, 장애인, 국가유공자 10,000원 / 조기예매할인(4월10일까지) 15,000원 / 대학로티켓닷컴회원할인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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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혹은 HOPELESS에게, 극단 창세의 살아남은 자들

HOMELESS 혹은 HOPELESS에게, 극단 창세의 살아남은 자들

최고 관리자 / 2013-05-02 / 조회수 8950


 하루에도 몇 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서울역.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일을 위해, 또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서울역을 스친다. 그러나 번화한 서울역의 음지, 그곳엔 무기력하게 머무른 홈리스들이 있다.

 극단 창세의 연극 <살아남은 자들>은 서커스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통해 ‘한국의 노숙인’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하며,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지독한 현실, 그리고 환상이 공존하는 이야기

 막이 올라간 무대 위로 객들이 모두 떠난 서울역 홈리스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가진 것이 없음에 분노하듯 사소한 것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서울역이 마치 자신들의 집인 양 낯선 이들에 예민하게 군다. 목적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린 그들은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일 밖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쁨이란 인터뷰를 하러 온 학생들이 가져온 술 한 병과 우연히 주운 장초 하나. 서울역의 홈리스들은 해가 지고 또 뜨기에 살아갈 뿐이다.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의 어느 날 스스로를 <PURE PLAY>팀이라 칭하는 무리가 나타난다. 그들은 홈리스들에게 사물을 통한 한계 극복을 지시하며 갖가지 퍼포먼스를 예시로 보여준다. 홈리스들 중 <PURE PLAY>팀의 기준을 통과하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홈리스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반신반의 하지만, 한 홈리스의 죽음을 겪은 후 필사적으로 연습에 매달린다. 살아있기에 살아갈 뿐이던 이들의 삶에 ‘목표’가 생긴 것이다. 처음엔 각자의 물건으로 혼자 연습하던 분위기가 점차 함께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면서 서울역에는 흡사 축제와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홈리스들은 사물과의 교감,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삶의 아름다움과 함께 공존의 의미에 대해 배워간다.



연극 <살아남은 자들>의 세 가지 관전 포인트!

POINT 1.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

 연극 <살아남은 자들>의 배경이 된 서울역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음지와 양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 중 하나다. 백화점과 이어진 세련된 신(新)역사를 거쳐 서울역 광장으로 나오면 상자를 깔고 앉은 홈리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연극은 <PURE PLAY>팀이라는 환상의 존재를 통해 홈리스들을 구제하지만, 구제의 기준으로 ‘공존’과 ‘목적’ 그리고 ‘노력’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노숙인 구제 정책들은 중요한 가치들이 결여된 미봉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공존의 의미’와 함께 ‘우리 이웃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POINT 2. 하나의 연극 속 풍성한 볼거리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 가량 진행되는 연극<살아남은 자들>은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홈리스들의 다툼으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환상의 존재들이 등장해 전통 악기 연주와 창가, 무술 시범, 무용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PURE PLAY>팀의 전문적인 시범 외에도 사물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홈리스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POINT 3. 상상하는 즐거움

 공연의 마지막 장면, 선택받은 두 사람을 제외한 홈리스들이 부스스 일어나 무료배식을 받는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상상했던 관객들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상당한 충격이다. 이러한 엔딩은 홈리스들이 <PURE PLAY>팀에게 처절하게 끌려가던 직전 장면과 대비되어 더 큰 반전으로 다가온다.

 혹자는 이러한 결말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을 근거로, 선택받은 두 사람이 ‘희생양’이 되어 다른 이들을 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 대신 다른 이를 구해달 부탁하던 두 사람에게 ‘단시간에 모든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며 거절하던 사회자의 단호한 말을 떠올리면 이는 아닌 것 같다.

 본인은 이러한 결말에 대해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삶의 가치를 깨닫기 전의 무기력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연출이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일종의 열린 결말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연극 <살아남은 자들>을 본 후 한동안 ‘상상병’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느낀 것들을 고맙게’

 삶이 무료하다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시간을 내서 연극 <살아남은 자들>을 보러가라고 말하고 싶다. 홈리스들이 미션을 수행하며 발전해가는 모습을 통해 당신이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홈리스들의 죄’가 ‘당신의 죄’는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루의 소중함과 공존의 의미를 잃지는 않았는지.’
 ‘또 스스로의 가능성을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무대 위 배우들이 Homeless라면, 당신은 Hopeless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럼 당신에게도 반복되는 일상 속 ‘지금 느낀 것들을 고맙게’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다.

글_ 대학로티켓닷컴 대학생 기자단 3기 권하림 nimp0729@naver.com
사진제공_ 극단 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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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 서울연극인대상 전문평가단

살아남은 자들 / 서울연극인대상 전문평가단

최고 관리자 / 2013-05-02 / 조회수 7537

<살아남은 자들>



공연 일시: 2013/04/18~04/21
공연 장소: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작/연출: 백석현
극단: 극단 창세


배우의 발성이나 발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 공연이었다. 안정되지 못한 호흡과 소리로 발화하여 내는 말은 의미전달과 정보전달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 극의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었다.이미지 연극이라고 나름 규정을 지었으나 서사가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만, 서커스를 한 희노애락의 배우들은 대사가 없어서인지 안정되어 보이긴 했다. 연극과 서커스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다고 연출이 밝히려면 서커스가 조금 더 참신하거나 서커스의 경지에 오를 정도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해 새로운 양식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보여 아쉽다. 배우가 조금 잘하는 정도의 서커스라면 오히려 극단 이와삼의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차력이 더욱 신선하다 할 수 있을 정도다. 공연을 두시간 동안 보고 이해를 못하는 정도라면 배우의 대사 점검을 다시 해야 할 의무가 있어 보이고, 연출이 연출에 글에 밝힌 박탄코프의 사실적 환상주의와 매칭이 안되는 것 또한 점검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작년 2012년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작품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다고 밖에 평하지 못하겠다.

                                                                                                                                                           – 박지연


공연 시작 삼십 분 전이었는데 매표소는 꽤 많은 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평가단이라고 말을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공연시작 5분을 남기고 다시 한 번 문의를 하였더니 그제서야 초대라고 얘기하며 발권을 해주었다. 좌석은 2층 맨끝으로 D구역 5열 66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여러 번 보았지만 2층에서의 관람은 처음이었다. 무대는 시야에서 너무 멀고 배우들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극이 시작되면서 고문은 시작되었다. 배우들의 대사가 전혀 전달이 안되었으며, 표정은 고사하고 어떤 역할의 어떤 이야기로 전개되는지도 파악이 힘들었다. 심히 보고 집중하려 했으나 너무 힘들고 지쳐서 피곤하기까지 했다. 층객석을 의식하지 않은 배우들의 시선은 당연했고, 그렇다면 2층 객석은 불필요하며 관객들에게 돈을 주고 내놓아서도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니면, 관객이 많을 때 무료관객들에게 그냥 내어주는 형식적인 좌석이란 말인가? 더불어 이점은 극장의 환경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고 배우들의 역량과 성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게 보아서 더는 평가라고 의견을 쓴다는 것이 무의미 할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 평가단에게는 어느 정도의 관람을 유용하게 배려해주셔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실 수 있을텐데. 좋은 평가를 받길 공연단은 원하지 않겠나. 물론, 오늘 같은 경우엔 오히려 2층 맨 뒷좌석의 관객입장을 경험할 수 있어서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러닝타임도 130분으로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연극을 보았다기보다는 멀리 2층에서 기예단 쇼를 내려다보면서 피곤했다는 기억뿐이다. 준비하고 있는 공연과 연습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 시간이었는데 괴로웠다. 앞으로의 평가가 사실상 기대감이 자꾸 떨어진다. 다음엔 차라리 소극장 공연을 관람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서미영


서사나 연기보다는 무대 장치와 조명, 서커스 연기와 기타 볼거리가 풍성한 공연이었다. 큰 무대에서 20명이 넘는 배우들이 동시에 움직이며 말을 해서 누가 말하는지, 어떤 행위가 중심인지 놓치는 때가 있을 정도였다. 신선하고 멋진 장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연극의 중심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한국사회와 노숙자 문제를 다루겠다는 취지와 관련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은 훌륭하지만, 무대 위에 나타난 모습은 화려한 무대와는 대조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노숙자 문제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상과 자료를 해석하고 통찰하는 인문학적 안목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역량이 뛰어난 스태프들과 연기자가 있다면 차라리 그에 어울리는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뛰기 전에 생각하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오판진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중 하나인 노숙자-홈리스 문제를 유진 박탄코프의 환상적 사실주의를 이용하여 무대화한 이 작품은 퍼포먼스와 연극의 경계 속에서 방황하는 듯 보인다. 포기한 자인가 실패한 자인가 명확하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커스’라는 환상적인 미션을 제시하여 허무한 그들의 하루하루에 ‘무언가’를 던진다 -그러나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그들에게 어떤 상징적인 것으로 주어지니 모순으로 느껴진다-. 결국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살아남아 무료급식을 받으며 또 살아가고 성공한 자들은 그들을 대신에 죽음 혹은 사라진다 라는 공감할 수 없는 결말을 내린다. 저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홈리스들의 두서 없는 말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했고, 스피커를 통해 크고 또렷하게 들려오는 푸어 플레이 팀의 사회자들의 목소리처럼 피에로들의 뛰어난 재주들은 극의 이야기를 가려 버린 채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져 버렸다.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여 감탄을 자아냈으나 감동은 주지 못했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의해 길을 잃었는데 관객들에게 각자의 해석에 따르면 된다고 하니 2시간 8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란에 혼란만 거듭되었다. 연출의 시도와 긴 시간 동안 연습하고 공연한 배우들의 노고에는 큰 박수를 보낸다.

이대희


현실 장면에서의 삶의 질척임, 어두움, 작품의 문제의식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배우들의 노력이 엿보였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공연시간이 2시간이 될 필요가 있는지, 등장인물 수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가 의문이다. 노숙자들에게 자기갱생의 시간이 각각 할애되는데, 두 세 명의 인물을 보고 난 후부터, 저 많은 인물들의 자기갱생 시간을 다 봐야 하는 압박감이 밀려온다. 매우 소모적인 연출이다. 현실과 환상을 잇는 정당성이 모호하다. 환상 장면의 의도는 알겠으나, 1차적으로 환상 장면이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어떤 매개로 인해 현실 장면과 맞닿아 있는지가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듯하다. 날카로운, 시의성 있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과잉, 불필요함, 어수선함은 이 공연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이주영


전년도 미래야 솟아라 작품상과 연출상을 탄 작품이라 하여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내러티브의 부재. 개연성 없는 구성. 이야기하려는 것과 보여주려는 것이 작위적이고 욕심이 넘치다보니 작품의 정체성 또한 모호했다. 작품 소개에 서커스의 양식을 결합했다고 했는데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는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이질이 동질화 되지 못하고 이질로 겉도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주의 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품의 내러티브와 상관없이 들어오는 퍼포먼스. 그리고 그 퍼포먼스의 수준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국 노래자랑같은 프로에서나 보여주면 적당할 장기자랑 수준에 그친 것도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 했으나 어느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양식에 대한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와 열정, 그 노력들이 좀 세련되고 프로다운 작업과정을 거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보여지며 고로 이 팀에 대한 기대는 유효하다.

정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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