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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르 연극(사실주의), 연극(풍자), [테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테마] 혼자 보기 좋은 공연, [추가분류] 초연, [추천연령] 전체, [추천성별] 전체
공연일자 2012-08-23(목) ~ 2012-09-01(토)
공연장소 동덕여대공연예술센터
공연시간 월-목 8시/금토 4시,8시/일 4시
관람등급 만 12세 이상
출연자 신영균, 이순재, 심양홍
티켓가격 30,000원
러닝타임 100분
제작 서울대학교 연극 동호회
공연문의 070-7788-5331
홈페이지
할인정보 일반회원예매할인(20%), 관악구민(50%,주민증확인) 학생(50%,초중고대 본인에한함) 65세이상(50%,본인에한함) 장애인.국가유공자(50%,동반1인까지) 다문화가족(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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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극장 <하얀 중립국>

색채극장 <하얀 중립국>

최고 관리자 / 2012-09-21 / 조회수 8667

색채 극장

- 하얀 중립국-

 

                                                                                                                                     성유경(이화여대 박사과정)

 

원작: 막스 프리쉬 <안도라>

연출: 최종률

번역: 김혜영

각색: 최종률, 신영선

극단: 관악극회(서울대학교 연극동문회 창단공연)

공연기간: 8.23~9.1

관람일시: 8.30. 8시

공연장소: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대극장

 

 

 

인간이 눈을 통해 보게 되는 색채(color)는 광원이 가지는 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안료가 칠해진 색표면이나 물체로부터 반사된 것일 수도 있다. 색채는 대표적인 시각 현상이지만, 인간의 다른 감각이나 주관적 해석과 교류하여 독특한 의미와 상징을 구축한다.

작년 3월, 극단 첼피쉬(chelfitsch)의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백성희장민호 극장)는 무대의 벽면을 컬러풀한 조명이 연주하는 건반으로 활용하여 색채의 소리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한 예라 할 수 있다. 색에 기반한 공감각은 색채음악 혹은 색채율동의 효과를 창출하며 무대 위 색채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혹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 추상화의 선구자인 피에트 몬드리안이 미셸 쇠포르의 연극 <덧없음은 영원하다>(1926)의 무대를 자신의 컴포지션(Composition)처럼 구성했을 때 쇠포르가 꿈꾸는 전위적 도취는 색채를 통해 드러났다. 비주얼 컬러의 동적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관악극회 창단작인 <하얀 중립국>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색채상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선 색채에 초점을 두어 각색한 점이 주목을 끈다. 막스 프리쉬의 원작을 그대로 끌고 가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소국(小國) 안도라의 사람들을 하얀족, 안도라를 침범하는 이웃나라의 사람들을 검은족, 그렇게도 하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면서 이후 검은족에 의해 처형되는 안드리(극중 시로/시로しろ는 일어로 흰색이라는 뜻)를 노란족 사람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제목인 <안도라>를 <하얀 중립국>으로 바꿨다. 여기에 연출의 말을 옮겨 적겠다.

하얀 중립국에는 세 종족이 등장한다. 흰색이 상징하듯 순수와 평화의 이미지로 그들 안에 내재한 사악함을 포장하는 하얀족, 무력의 우위를 앞세워 이웃 종족을 거침없이 침탈하는 검은족, 남다른 근면성과 재능에 대한 시기 때문이라지만, 실상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박해당하는 노란족이 그것이다. (…) 각색 대본에서는 원작의 유대인 문제를 일반화하기 위해 가상의 종족, 현재의 상황으로 바꾸었다. (…)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지역갈등과 이념갈등, 학원폭력과 왕따현상, 청소년들의 자살,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착취와 학대, 새터민들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 (…) 사실성과 상징성, 서정성과 서사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을 연출의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

―――――연출의 말 中

프리쉬의 <안도라>에 내재되어 있는 색채상징을 끄집어내 (프리쉬가 누누이 강조했듯) <안도라>를 히틀러의 제3제국과 반유대주의로 밀착해 읽어내지 않은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흰색은 순수와 평화, 청결을 상징하지만 피부의 상처나 점, 얼룩덜룩한 톤을 감추기 위해 덧바르는 하얀 분가루에서 추측할 수 있듯 포장의 기능을 갖는다. 또한, 인공적인 표백으로 오염과 오점을 지우는 도덕적 정화를 뜻하기도 한다. 한때 표백할 피륙을 널어 말린 공업 지역 맨체스터 근방이 새하얀 초원처럼 보였다는 기록은 흰색의 이중성을 꼬집어준다. 안도라 역시 안도라인들이 자랑스러워하듯 신앙심이 깊고 평화를 사랑하는 흰색 국가지만, 실은 약소하고 가난한 안도라를 중립국으로 포장하면서 안드리에게 가하는(받아준 척 하지만 배척하는) 도덕적 위선을 감추는 인공미의 흰색 국가다. 암흑과 압박, 공포를 상징하는 검은 군대의 검은 나라를 표백하면 흰색 국가의 침묵이 보인다. 원작에서 안도라인들에 의해 “치즈처럼 노란” 녀석이라고 놀림을 받고, “황색 전단”의 표적이 되는 안드리를 노란족이라 이름 붙인 것 역시 꼼꼼한 텍스트 독해에서 이뤄졌다 할 수 있다. 이질적이라 비난받고, (다른)냄새난다고 따돌림 당하고, 고정상에 포획되는, 그리하여 적대적 시선을 받는 존재에 대한 탐구는 정치철학자들이 논하는 차이에 대한 관용의 중요성(마이클 왈쩌)이나 개인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할 때 (기존)사회의 인정질서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것이 아닌 인정투쟁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정이론(악셀 호네트)을 떠올리게 한다. 연출가의 말대로 하얀족이든 검은족이든 편견과 학대는 눈엣가시인 노란 점 하나를 가만두지 않으니 말이다. 노란색을 인종의 문제로 생각하든, 경제⋅정치⋅성적 소수자로 생각하든 어찌됐든 그것은 열린 해석을 요구한다.

무대 위에서 하얀족으로 분한 배우들은 흰색 의상을 입고, 검은족으로 분한 배우들은 검은 의상을 입고 있다. 무채색의 색채대비는 흑백사진의 정적인 명암을 안겨주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이 흰색 옷은 광원(조명)에 의해 누리끼리한, 맑고 밝고 투명하지 않은 침침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색채 외관이 조명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 효과를 드러내면서 하얀족의 위선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검은 군대의 의상을 현대적인 디자인과 유니폼의 속성으로 규정한 반면, 안드리 친모인 검은족 여인에게는 이와 대비되는 고전적인 귀부인 드레스를 착용케 한 점도 시각적 형상화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하얀 중립국>에서 무채색의 명암대비에 활력과 강렬함을 주는 표현기법은 무대 위 스크린에서 뿜어내는 색채의 향연이다. 노란족 시로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압박과 비극을 강조하고 싶을 때 스크린은 노란색으로 뒤덮이고, 시로의 친부가 자살하는 장면에서는 핏빛의 붉은색으로 뒤덮인다. 이 두 색은 채도를 높여 관객에게 원색의 어지러움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로의 미래를 암시하는 “태양은 숲속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다는 대사는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져 붉음과 푸름, 초록이 뒤엉키는 컬러매칭으로 재현된다. 이 대사는 프리쉬의 원작에서 중요한 대사인데, 이를 놓치지 않고 무대에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죽음의 핏빛이 절망에 사로잡힌 시로가 꿈꾸는 희망의 푸른색이고, 결국 하얀족의 낡은 도덕관(초록은 도덕성을 상징한다/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을 따름이라고 말한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을 연상시키는)에서 완결된다는 의미를 내재하는데, 스크린에서 세 컬러는 뒤섞인다. 아름답지 않은 컬러의 퇴적은 자극적이며, 불순하다. (관객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시로의 여동생이 군인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그림자의 거친 실루엣으로 보여주는 것 외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조색판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깊게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색채상징을 통한 연출미학은 꼼꼼한 독해와 그것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원작에서의 색채상징을 무대로 옮길 때 1:1의 (색깔)맞춤 대응, 충실하고 성실할 뿐 창의적인 해석이 부재하는 색채 번역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하얀 중립국>은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여겨진다. 서사와 서정에 잘 안착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어떤 잠재력이 나올 것도 같은데, 그 이상의 상상력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인간의 고정된 상을 비판하는 <안도라>를 인간의 고정된 색채상으로 드러내는 것이 최상의 연출인지 재고하길 바란다. 색채를 활용하고 스크린의 거대함으로 관객에게 시각적 포만감을 준다는 기본 착상은 좋으니 이후 재연이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연출기법에 색채의 공감각이나 움직임, 새로운 컬러매칭 등이 더해지면 좋을 듯싶다.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은 조명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 효과를 드러내면서 하얀족의 위선을 강조하고, 하얀족의 증언대 씬을 로우 앵글 숏처럼 연출해 인물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면서 위압적인 존재로 지각하게 만든 장면이다. 이 둘은 창의적이었다고 여겨진다. 배우 훈련이 잘 안 된 배우도 있었으나 창단작이기에 여러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텍스트를 선택하는 것은 능력이다. 프리쉬의 <안도라>는 매력적인 텍스트이고, 정치적인 텍스트이기에 선택은 적절했다. 다만 텍스트의 존재감이 클 경우 관객들은 이를 뚫고 나오는 공연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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