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서울연극제 <콜라소녀> 외
최고 관리자 / 2012-05-20 / 조회수 9041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과 기획초청공연
1.
공식참가작
(1) 극단 Theatre 21의
이명일 작/연출의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텅 빈 무대에 연극이 시작되면 검은 배경 막에 직사각의 스크린이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스크린에 영상이 투여되면, 토끼 탈을 쓴 인간의 그림자가 지하 굴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온다. 향후 이 토끼그림자
영상은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배경 막에 투사된다.
무대전면 조명이 비추어진 사각의 공간에 카 레이서 면허를 따려는
젊은 여인이 경기용차를 운전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손으로 언덕을 넘고 다른 차를 추월하고 발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무대전체에 울려 퍼지는
자동차 효과음은 객석의 분위기를 자동차경기장 관람석에 앉아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만들고, 관객은 차츰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맹렬한 자동차
가속 음과 함께 드디어 1등으로 골인하는 젊은 여인의 환호성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올 법 한데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명이 꺼지고 젊은 여인의 모습이 사라지면, 배경 막에 자동차 쾌속
음과 함께 가로로 그어지는 굵은 선의 영상이 투사된다.
이어 지하철 역사로 모여드는 인간군상과 지하철을 타려고 대기하는
인물들 속에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 전철이 도착하고, 출근시간과 지하철의 빽빽한 공간이 연기자들의 의해 묘사된다. 연기자들의 손에는 각자 가방이
한 개씩 들려져 있다. 다음 역에서 비좁은 공간을 밀치고 커다란 가방을 멘 노인이 들어선다. 가방의 엄청난 크기와 비좁은 공간으로 인해, 가방은
사람들 머리위로 들어 올려지고, 노인은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라며 소리친다. 북새통에 현금을 도난당했다는 승객이 가방을 열어 보인다.
이러한 장면에 비록 립싱크이기는 하지만 출연자들의 노래가 객석의
분위기를 흥겹게 북돋아 간다. 출연자들의 노래는 화음까지 제대로 된 열창이다.
개중에는 객석까지 뛰어올라 관객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여하튼 노인과 젊은 여인은 같은 장소에 하차하고, 젊은 여인이 큰
가방에 의아스러움을 표하자, 노인은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들어있다며 가방을 열어 보인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잡동사니 생활용품들
뿐이다.
젊은 여인은 자신의 가방에서 수험용 카레이서 서적이 사라지고
회중전등이 들어있음을 알고 놀란다.
지하철 소매치기 일당의 모임장소에서, 한 소매치기의 가방에서
공동으로 구입한 회중전등 대신 엉뚱한 카 레이서 서적이 나옴으로 해서 황당해 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향후 젊은 여인은 다니던 직장대신 신형자동차 대리점 알바로 직업을
바꾸고, 전에 다니던 직장상사에게 한 대의 자동차 구매를 권하지만, 상사는 현재 봉급의 사용처를, 줄줄이 역은 목록을 펴 보이며 구입을 거절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장면전환이 되면 젊은 여인은 1%의 부유한 고객만 출입하는 미용실에 자동차 리플렛(leaflet)을 들고 등장한다. 그러나
회원제로 운영되는 미용실에 등록이 안 된 젊은 여인의 출입이 가능할 리 없다. 젊은 여인의 기지로 겨우 출입이 허용되어, 젊은 여인은 대기실에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에게 다가간다. 고객들....요즘 의상이나 행동거지, 그리고 사고까지 남성화 되어가는 여성들.... 이와는 반대로 남성들은
음성이나 억양, 차림새와 장신구, 그리고 귀걸이까지 여성화 되어가듯... 1% 부유한 여성고객만 출입이 가능한 그런 미용실에 대기 중인 세칭
사모님 고객의 세시풍속도가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이들에게 접근해 자동차를 소개하며 벌이는 젊은 여인의 애절한 모습과 이를 제지하는 종업원,
그리고 부유하고 풍요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지성적인 면에서는 일반인보다도 일천한 사모님고객의 모습에서, 객석의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객은 깊은 슬픔의 멍울을 가슴에 안게 된다.
대단원에서 카 레이서의 꿈을 접은 젊은 여인의 귀가의 발길과 커다란
가방을 등에 지고 다니던 노인의 우연한 마주침은 절묘한 대비가 되어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김민주, 서현성, 이영호, 이다일, 이준희, 김서진, 이새롬,
장원석, 나은선의 열연과 열창, 그리고 독특한 성격창출은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다만 립싱크(lip synch)보다는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것이, 잘
못 부르더라도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권한다.
토끼영상도 연극의 활력소가 되었고 독특함으로 해서 기억에
남는다.
김영미의 기획, 윤정인의 작곡&음악감독, 손지희의
무대미술&소품, 박성민의 조명, 신규빈의 영상, 이새롬의 조연출, 정혜원의 이미지디자인, MAX Theatre의 음악제작 등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Theatre Company 201의 이명일 작/연출의 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2)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콜라소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이 연극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3형제 중 맏아들의 환갑에 모여든
둘째 셋째 내외와 맏아들의 과년한 손녀와 교사인 남자친구, 그리고 회상속의 인물인 막내딸이 등장해 엮어가는 이야기다.
무대 왼쪽에는 집의 뼈대만 서있고, 지붕역시 기와를 얹지 않은 채
나무로만 얼기설기 덮었으나, 바닥의 마루는 제대로 길게 가로 놓여있는 것이 흡사 정자(亭子)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무대 오른쪽에는 자주색
꽃이 핀 유도화(柳桃花)화 한그루가 서있고, 주위에 너덧 개의 둥근 바위가 놓여 있다. 나무 옆으로 아담한 장독대가 있고 독과 항아리가 옹기종기
놓여있다. 무대 오른쪽에는 객석 가까이에 평상(平床)이 놓여있고, 무대 앞쪽에는 기다란 천을 바닥에 두 군데로 나누어 깔아 놓고, 청국장 콩을
널어서 말리고 있다.
후반부에는 유도화를 무대 왼쪽 중앙으로 옮겨 세워놓고, 억새풀을
무대 전체에 여기저기 배치해 장관을 이룬다. 대단원의 세트는 도입의 장면과 마찬가지로 처리했다.
강변과 인접한 한적한 마을이라는 느낌을 주는 무대, 우리 누구나의
어머니의 모습인 백발의 노모, 그리고 시골 토박이로 환갑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볼 수 있는 평범함, 여기에 시골티를 벗고 결혼적령기를 살짝
넘겼지만 예쁘고 귀여운 딸과 용모처럼 차림새도 단정한 딸의 남자친구인 학교선생님이 등장하지만 딸은 남자친구를 빨리 가라며 내 쫓듯이 돌려보낸다.
곧이어 수더분한 차림과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육체노동이 직업인 듯싶은 둘째 아들과 야한 핑크빛 옷에 몸에 꽉 끼는 바지를 입은 둘째의 부인이
등장해 마치 알을 낳은 암탉처럼 꼬꼬댁 거리며 엉덩이를 휘두르며 무대를 누비는 모습에서 우리 대부분의 서민가정 중년부인의 모습을 여실히 감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새의 셋째 내외의 모습과
어투는 중산층의 냄새가 풍겨, 형의 가족들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노모의 의식 속에는 죽은 막내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늘 환영처럼
떠오르며 다가온다. 수더분하지만 아름다운 딸의 모습은 한 시도 노모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가족은 막내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노모에게 숨겼지만,
노모가 어찌 딸의 죽음을 모를 수 있으랴? 향후 노모의 혼자 중얼거림이나 환영을 보고 대하는 듯싶은 행동은 치매증세로 보이기도 하지만, 치매와는
다른 외로움의 상태에서 흔히 일어나는 증세로, 외로움에서 벗어나거나, 단주를 하면 그런 증세는 저절로 없어지기 마련이다.
며느리들은 둘러앉아 환갑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만들며 둘째 며느리가
셋째에 대한 손위 사람으로서의 태도는, 잘사는 막내에 대한 시샘처럼 보여 지기도 해 객석의 폭소를 유발시킨다. 남자형제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하는
대화에서, 이 한적한 강변마을에 어느새 펜션이 여러 곳에 들어서고, 지역개발이 이루어진다는 소식과 함께, 오르기 시작하는 땅값에 관심을
집중시키지만, 맏형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 격이다.
노모의 소풍 제안으로 형제들 내외와 맏형의 딸은 억새풀이 욱어진
경치 좋은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다. 여기저기 펜션 간판이 매달린 것이 눈에 띄고, 아우들은 형님에게 토지매각을 권하고, 급기야 토지분할이나
상속권까지 주장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막내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둘째의 두 손가락이 잘렸지만, 회사를 위해 항변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참았던 일 등이 소개되기도 한다.
노모는 강 건너로 막내딸의 멀어져 가는 환영에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손을 흔드는 노모의 모습을 보고, 친지에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생각한 가족들 모두가, 노모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손을 흔드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대단원에서 맏며느리가 나누어 주는 곡물과 음식, 그리고 나물 등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가려는 둘째 며느리의 모습은, 우리의 모든 며느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토지매각의 뜻을 관철한 셋째의 귀가하는 자동차의 엔진
시동 음이 우렁차게 들리면서 무대는 조용해진다.
환갑잔치 상 앞에 앉아있는 맏이와 아내, 청국장 콩을 뒤적이는
노모의 모습과 몇 십 년을 자란 유도 화 나무, 거기에 만개한 자주색 꽃은, 북새통 뒤에 호젓하고 평안함과 함께, 무대를 한 폭의 그림으로
느끼게 한다.
맏이의 과년한 딸이 어린아이시절의 색동옷을 차려입고 나와서 환갑
아빠에게 노래 부르며 추어보이는 춤은 대견하고 사랑스러워 객석의 박수가 터져 나오고, 마침 이때 딸의 남자친구인 교사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등장해
이 광경을 나무 뒤에서 지켜본다. 딸의 축하 춤과 노래가 끝나자 아버지는 딸에게 어서 시집을 가는 게 이를 데 없는 효도라고 이야기한다. 이때
딸의 남자친구가 나와 환갑을 축하하고 술을 올리며, 딸의 어머니에게 “어머니”라 호칭한다. 딸의 어머니가 아버지 등 뒤에 얼굴을 묻으며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은 관객 모두의 기쁨과 폭소로 이어진다.
남자친구는 정식으로 딸의 부모 앞에서 청혼을 하고, 이를 승낙하는
아버지,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변함없는 노모의 모습은 절묘한 대비가 되어, 관객 모두는 콜라를 마시고 트림을 할 때의 코의
시큰거림처럼 눈물을 글썽이는데서 연극은 마무리를 하게 된다.
김용선, 장용철, 남기애, 박성준, 김남진, 정세라, 성노진,
황세원, 김승환, 박시영 등이 등장해 각자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하성옥의 무대지자인, 이기홍의 무대감독, 이형주의 음악감독,
나한수의 조명디자인, 장서정의 조명팀, 이지락의 영상디자인, 백지영의 분장디자인, 조옥희 황미란의 분장팀, 강기정의 의상디자인, 서정인의
소품디자인, 곽정화의 조연출, 김다정의 음향 오퍼레이터, 송경영의 영상 오퍼레이터, 고재하 최성호 김대업 이승현 홍승만의 무대전환, 다홍디자인의
그래픽, 코르코르디움의 기획 등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콜라소녀>를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3)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작/연출의 <인생>(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연극 <인생>은 이미 고인이 된,
주세죽(朱世竹:1901~1955)이라는 일제치하 시 사회주의자 겸 미모의 여성 혁명가를 등장시켜, 불교에서의 업을 청산하고 열반으로 가는 길목에
마련된 지옥 같은 한 공간에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고, 동지이자 남편이었던 이정((而丁) 박헌영(朴憲永:1900~1955)을 찾으며, 과거 그와
연관이 있거나, 그를 기억하는 인물들을 상봉하고, 평생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미제 앞잡이이자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처형을
당하게 된 이유가 타당한지, 그 진위를 가리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박헌영의 부인이자 동지였던 주세죽은 공산주의 혁명을 꿈꾼
여성투사였다.
두 사람은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을 할 때, 당대의 명
영화감독 김용환이 조국을 떠나는 그들 부부의 도강을 지켜보며 작곡한 노래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가 심훈은 그의 첫 번째 소설 <동방의 연인>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묘사했고, 방송작가 김기팔이 쓰고, 홍성민이 주인공 박헌영 역을 한 TV드라마 <박헌영>이 20여
년 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모스크바의 국제레닌학교에서 사회주의 수업을 쌓은 박헌영은
코민테른으로부터 조선공산당 재건을 지시받고, 혼신의 열정을 다해 한반도 공산혁명에 매진한다. 해방이 되자 남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활약하며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반공주의자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정면으로 맞서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북으로 간다. 그러나 김일성 역시
스탈린의 사주를 받고 북 단독정부수립과 정권장악에 혈안이 되어, 자신보다 지성, 인품, 웅도 등 모든 부문에서 탁월한 박헌영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엉뚱한 누명을 씌워 처형토록 만든다.
주세죽은 박헌영을 돕고, 그가 상해에서 옥고를 치를 때에는
옥바라지를 하는 등, 그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그의 활동을 적극 보필한다. 박헌영이 남으로 가 활동을 벌일 때에는 모스크바에 남아 딸
비비안을 기르며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러나 박헌영이 김일성의 질시로 죽게 되니, 주세죽도 그의 뒤를 따른다.
무대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입구를 등퇴장 로로 하고, 배경 막
쪽을 객석으로 만들어 놓았다. 객석 좌우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입구 벽면과 좌우 벽에는 기괴하게 조형된 동물들의 탈을 걸어놓고, 출연자들이 이
탈을 쓰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자욱한 농무 속에서, 일제치하로부터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북분단의 비극적 현실 앞에서, 목숨을 잃고 역사의 심연으로 사라져간 혁명가의 망령들이 하나 둘 <눈물젖은
두만강>의 처절한 곡과 함께 허우적거리며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제일 먼저 등장한 주세죽의 망령은 미모의 발레리나였던 그녀와 용모와
체격이 대동소이해 실제로 환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 후 차례로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은, 불교에서처럼 생의
업보를 털어버리고 열반(涅槃)으로 향하기 위해, 각자의 의상을 무대에 훌훌 벗어던지고 나신(裸身)으로 퇴장하는 명장면이 연출된다.
주세죽은, 평생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박헌영이 어째서 김일성에게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는지를, 당시 박헌영과 연관이 있던 인물들과 법정에 함께 섰던 인물, 그리고 증언을 했던 인물들에게
차례로 묻는다.
그런데 인물들은 하나같이 남녀 모두가 붉은 치마차림이고, 간혹
바지를 입은 남자가 섞여있을 뿐 차림새가 희한하고 독특하다. 동작도 무용을 하거나 팬터마임을 하듯 허우적거리며 움직여, 움직임 자체도
유별나다.
다부진 몸매에 안경을 쓴 박헌영의 모습이 중앙의 등퇴장 로로 등장할
때에는 각광과 농무가 그를 신비스러운 혁명투사로 보이도록 연출해,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망령들은 박헌영이 죽을 때까지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었음을 증언한다.
박헌영도 나신으로 재차 등장해 그 주장에 동조를 하듯 자신의 평생의
신념을 확신시키고 사라진다.
대단원에서 소망을 이룬 주세죽의 망령은, 자신의 업을 털어버리듯
의상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관객의 뇌리와 가슴에 깊이 각인 시킨 채 <눈물 젖은 두만강>의 멜로디와 함께 깊은
역사의 강물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이승훈, 김현아, 양말복, 권택기, 김영조, 나종민, 박상현,
마광현, 서재영, 신주아, 원채리 등 출연자 전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온몸으로 <인생>을 연기해 냈고, 오경숙의 예술감독, 손호성의
무대, 김철희의 조명, 신성아의 음향과 작곡, 최홍준의 사진, 김미영의 보조, 배성진과 왕용성의 진행 등 모두의 열정이 연극의 수준을 향상시켜,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작/연출의 <인생>을 문제작이자 예술성이 높은 우수한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필자와 함께 관극을 한 박헌영 선생의 아들 원경스님은, 이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아버지의 일대기를 그려낼 줄은 몰랐다며, 예술적 표현도 으뜸이고, 과거 공연의 티를 벗었다며, 지난번 대학로예술극장에서의
공연에서보다 일취월장한 공연이라고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4)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신명순
원작 이해성 작 김승철 연출의 <전하의 봄>(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962년에 발표한 신명순 원작 <전하>는
수양대군(세조)이 정권을 찬탈하고 단종을 폐위하니, 집현전 학사들이 이에 반대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죽은 사육신과 생육신은
후에 그들의 충절을 높이 평가받아 충신의 본보기가 된다. 그러나 집현전 학사들 중 유일하게 수양대군에게 협력해 그를 보필한 신숙주는
승승장구하다가 영상의 반열에까지 올라 세조와 영욕을 함께하니, 후세 사람들은 그를 변절자로 칭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신명순 선생은 이러한 신숙주의 변절과 고뇌를 단막희곡에 절묘하게
그려냈다.
연극 <전하>는 2011년 3월 서계동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단막극 연작 <새판에서 다시 놀다> 3작품 중 신명순 원작의 <전하>를 김승철이 연출해 성공적인 공연을
거두고, 향후 단독공연의 가능성을 타진케 했다.
이해성 작가는, 한 극단이 <전하>를 공연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 사육신으로 등장하는 연기자들과 신숙주, 세조로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성격창출과정과 연습장에서의 갈등과 고뇌, 그리고 이 연극을
연출하며 타악기로 배경음까지 연주하던 연출가가, 이 작품이 5 16 군사 쿠데타 직후에 발표된 작품이라, 당국의 눈총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을
극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도입에 활쏘기를 즐긴 노산군(단종)의 활 쏘는 장면을
집어넣고, 대단원에 노산군의 죽는 장면, 그리고 노산군의 시체를 건드리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 개의치 않고, 시신을 수습해 암장한 엄홍도를
등장시켜, 그의 충절을 부각시키며 극을 마무리해, 새로운 장막극 <전하의 봄>으로 탄생시켰다.
극장을 들어서면 배경 막에 그려 넣은 나무그림의 묵화가 눈에
들어온다. 칼날 같은 필치가 기운생동함은 물론 금방 칼부림이라도 일어날 듯싶은 기세로 관객의 시야에 다가온다.
무대 양쪽에 짙은 색의 언덕길을 만들어 등장인물들이 올라가도록
만들었고,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타악기를 비치하고, 연출가 역의 연기자가 등장해 시종일관 극의 흐름과 어울리는 효과음을 창출한다.
무대 왼쪽 벽에 열려있는 문을 만들어 대단원에서 단종의 시신을
엄홍도가 수레에 싣고 퇴장하도록 설정해 놓았다.
연극은 도입에 어린 노산군이 활을 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면이
바뀌면 세조와 신숙주가 등장하고, 곧이어 등장한 김질의 고변으로 역모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집현전 학사들이 대거 포승에 묶인 채 등장하고,
성삼문의 일편단심이 무대 위에 숭엄하게 그려진다. 성삼문의 죽기를 고사한 충절에 친구인 신숙주의 우정 어린 설득도 무위로 끝난다. 세조의 분노가
폭발하고, 성삼문은 처형장으로 향한다. 향후 세조의 신숙주에 대한 신뢰가 점차 증가한다.
연극연습과정에서 연기자들의 작품해석과 성격창출에 대한 고뇌와 갈등이
연습중단사유로 되고, 그들의 번민이 연출가에게는 물론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신숙주의 부인이 남편의 변절을 부끄러워하며, 목을 매어 자진하는
장면의 그림자 영상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사육신의 장렬한 죽음이 세조의 칼부림과 함께, 하나하나 목이 잘려 천정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장면은, 충격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명장면으로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단원에서 노산군이 죽임을 당한 후, 어명에 개의치 않고 시신을
염습해 운반하려는 엄홍도와 어명을 지키라는 신숙주가 대의명분과 천하의 도리를 놓고 벌이는 설전은, 타악기의 반복된 울림과 함께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고, 또한 관객의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경성, 김학수, 김성일, 이형주, 강진휘, 박상석, 서삼석,
김민태, 박시내, 김관장, 이진복 등이 출연해 각자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김창기의 조명, 박찬호의 무대, 공양제의 음악, 목진희와 이애리의
분장, 한아름의 의상, 이진복의 소품, 이은경의 사진, 서왕석의 무대감독, 한보람과 김관장의 기획, 송해리의 홍보디자인, 신정원의 조명오퍼,
마희선의 조연출 등 스텝 진의 노력과 열정이 혼연일체가 되어, 신명순 원작, 배선애의 드라마터그, 그리고 이유라의 학술연구가 이해성 작, 김승철
연출의 <전하의 봄>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로얄 씨어터의 강다민
작 류근혜 연출의 <용팔이>(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이 연극은 <용팔이>라는 이름을 놓고, 7개의 서로다른
옴니버스 식의 촌극으로 엮어지는 공연이다.
첫 번째는 입사시험장의 풍경이다. 배경 막에는 세 군데의 창에
커다란 차일이 처져있고, 무대 오른쪽에는 수험생의 의자가 놓여있다. 오른쪽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시험관과 수험생의 질의응답과정에서 대학
선후배사이임이 들어나고 또 대학시절에 연극반원이었던 것이 밝혀지면서, 수험생이 연극반 선배 중 자신에게 영향을 준 용팔이라는 이름을 자주
들먹이니, 시험관은 자신의 이름도 용팔이라고 밝힌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남녀가 용팔이라는 인물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
장면으로 엮어진다. 어느 카페에 자리한 한 청년이 용팔이와 통화중이다. 곧이어 등장한 젊은 여성은 그 통화내용을 듣게 된다. 두 사람은 용팔이로
인해 카페에 온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다시 걸려온 휴대전화에서 용팔이가 이장소로 오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려지고, 두 사람은 용팔이로 인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세 번째는 독일여행중인 한 젊은 여인이 강둑길로 산책을 하게 되고,
그 둑에 먼저와 앉아 있던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두 여인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젊은 여인은 용팔이에게 실연을
당해 해외여행중이라는 사실을 나이든 여인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나이든 여인은 용팔이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밝힌다.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해 두
여인은 잠시 서먹서먹해 지지만 결국 다시 가까워진다.
네 번째는 젊은 남성 둘이 당구장에서 용팔이 이야기를 하며 당구를
친다. 당구보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용팔이로 이어진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포장마차를 하는 어머니와 딸이 용팔이가 그린
그림을 놓고 대화를 편다. 그림은 흰 거품을 뿜으며 높은 파도가 일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가는 그림이다. 독특한 것은 바다속 오징어떼가 하늘로
날아오르듯 떼지어 오르는 그림이다. 딸은 화가에게 과년한 딸을 시집보냈으면 하는 마음이고, 딸은 멋대로 홀로 살기를 고집한다. 이러한 어머니와
딸의 갈등이 그림을 놓고 벌어진다.
여섯 번째는 노부부가 개를 기르며 개 이름을 용팔이라고 지은 것을
두고 벌이는 이야기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남녀가 선을 보는 자리에서 남성을 대면한
여인이, 남성을 어린 시절 자신의 동무로 착각하며 이름을 김용팔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남성은 자신의 이름이 김용팔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라며,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선보는 자리에 나왔노라 설명하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니, 여인에게 빨리 가라고 이른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을 무시한다며, 상대남의 무례함을 지적한다. 그러자 남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용팔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장면은 두 사람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전원마을에서 용팔이와 여인의 동화 같고 꿈같은 어린 시절의 장면이 소개되면서 옴니버스 스타일의 <용팔이>의
일곱 가지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윤여성, 도영희, 이경훈, 채연정, 조경주, 전인혁, 이지훈,
정예찬, 신재희, 정예진 등 출연자들의 호연이 돋보였고, 조명감독 최형오, 작곡 연주 임애영, 조연출 양정화, 제작감독 이동수, 기획 유준기,
진행 이태민, 홍보 배은아, 무대제작 천원욱, 프로그램 디자인 성득환, 분장 강대영, 등 스텝 모두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강다민 작 류근혜
연출의 <용팔이>를 성공작으로 만들었다.
(6) 극단 표현과
상상&유목민의 김윤미 작 손정우 연출 <낙타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열사의 사막에는 소소초(蘇蘇草) 혹은 낙타가 잘 먹는다 하여
<낙타 풀>이라 불리는 “로우타우차우”가 여기저기 풀숲을 이루고 있다. 건조한 사막에서 자라는 “로우타우차우”에게는 날카로운 잔가시가
잔뜩 돋아있기 때문에 낙타에게 통째로 먹히지 않고 그 생존을 유지한다. 로우타우초우를 먹는 낙타는 입안이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지만 낙타는
생존을 위해 가시투성이의 <낙타 풀>이라도 먹는다. 사막에서 생존하는 식물과 동물의 눈물겨운 존재방식이라고나 할까?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은 “로우타우차우”의 붉은 꽃들은 낙타가 흘린
피처럼 저녁 햇살을 받아 선연하다.
<낙타 풀>은 대학 86학번 대학동기생들 중 한 운동권
여학생의 죽음을 놓고, 동기생들의 회고와 애도,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그린 연극이다.
15년 뒤에 이들은 죽은 동창의 무덤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미
고인의 무덤은 다른 사람의 묘로 바뀌었고, 다시 10년 뒤에 해후하지만, 사진속의 인물들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간들 변함이 없으나,
실제 인물은 백발이 성성하듯, 기억속의 인물 역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그 인물을 대면하면 세월처럼 변한 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듯, 50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25년을 추억에 잠긴 채 살아가고, 사랑의 대상 역시 과거의 인물의 모습과 흡사한 남성을 선택하지만, 인물은
각자가 서로 다르듯이, 모습이 같다고 하여 과거의 사랑이 재현될 수는 없음을 연극에 그려 보인다. 또한 입안의 상처를 마다하고 낙타 풀을 먹는
낙타처럼, 가슴속 깊이 상처를 남길지언정 과거 사랑을 반추하는 주인공의 되풀이가, 사진 촬영하듯 이어진다.
무대는 여기저기 억새풀을 정원수처럼 심어놓았고, 배경 막 가까이
한자(1尺) 높이나 반자 높이의 긴 단을 깔고, 무대 좌우로 연결시켜 놓았다.
작은 의자와 벤치를 억새풀 가까이 비치해, 공원이나, 묘원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고, 부분조명으로 자취방이나, 거실 등을 구분 짓도록 연출했다.
특히 장면전환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홍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극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 기억에 남는다.
김왕근, 이승기, 송영학, 소희정, 임일규, 최현미, 박초롱 등이
출연해 호수의 맑고 잔잔한 물결 같은 동작과 음악의 낮은음자리표 같은 음성으로 극을 서정적으로 이끌어 갔기에, 비록 86학번 동기들의
이야기지만, 60학번이나, 70학번까지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예술감독 노승희, 무대디자인 이윤수, 조명디자인 장영섭, 안무
강혜련, 의상 이수연, 음향 박용신, 영상 최종찬, 오퍼 이규성 홍성우, 무대크루 권태현 김가희, 등이 완벽한 기량을 발휘해, 김윤미 작,
손정우 연출, 신동준 조연출, 도은정 기획의 <낙타풀>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7)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극단
연우무대의 최명숙 작 안경모 연출의 <그리고 또 하루>(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그리고 또 하루>는 무인도에 표류한 두 남녀의
이야기다.
무대는 바닷가의 백사장처럼 밝고 부드러운 색으로 칠하듯 단색으로
무대전체를 처리해, 마치 포근한 색감의 부직포를 펼쳐놓은 듯싶은 느낌이다. 극장의 천정 바로 아래 부분에서 무대 3면 벽 상단에 전체에 펼쳐진
커튼이나 구름 같은 느낌의 디자인이나, 무대 오른쪽에 1m 높이의 집필실을 만들어 놓고, 백발이 성성한 인물이 책상 앞에 앉아 해설을 곁들여
집필하는 장면과 계단에 카펫처럼 깔아놓은 부직포는 색다른 느낌으로 부각된다, 무대바닥도 같은 색으로 처리되고, 여기저기에 뗏목, 고기잡이 도구,
그리고 바위까지도 백사장과 같은 색이기에 무대는 거대한 화폭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연극은 도입에 무인도에 불시착한 미모의 여인과 더부룩하지만 진실,
소탈, 온화한 성격에다가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결정된 청년의 이야기가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작가의 집필과 내래이션으로 연극이 시작된다.
처음 대면한 젊은 남녀에게서 늘 상 볼 수 있는 서먹서먹함과 약혼한
여인의 경계심이 노출되고, 차츰 그러한 감정이 극복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그것이 상대방과 차이가 있을 때에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며,
다투는 정경이 연출되지만, 절해의 고도에서 두 사람 뿐이라는 현실에 익숙해 가면서 여인은 남성에게 새로운 사랑의 꽃망울을 터뜨려 몸과 마음을
살포시 밀착시킨다. 그러나 무인도라는 격리된 상황과 고도를 탈출하려는 열망은 여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 소녀의 등장과 그녀의 시적 언어 같은
해설을 통해 객석에 전달되지만, 역경에서 탈출하려는 여인의 절실함은 빛 고래라는 상상이 빚어낸 가상의 생물에게 탐닉하게 되고, 대단원에서 여인은
빛 고래 속으로 들어가 행방을 감춘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백발의 작가는 거리에서 우연히 한 여인과 스쳐
지나간다. 작가는 문득 과거의 한 여인, 무인도에서의 미모의 여인을 떠올리고, 여인을 부른다. 돌아서서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여인의 모습은,
바로 절해의 고도에서 작가와 사랑을 나누었던 바로 그 여인의 성장한 모습이라, 작가의 가슴 뛰는 소리가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하지만 무인도에서의
사랑은 이미 아득한 옛날의 노래일 뿐......
작가의 허탈한 발걸음과 하늘에 명멸하는 별빛 속으로 관객은 작가와
같은 심정이 되어<그리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남명렬이 작가로 출연해 명해설로 극의 분위기를 100% 서정적으로
이끌었고, 이지현과 이화룡의 남과 여로 출연해 꿈속 같고 환상 같은 장면을 절묘하게 연기해,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이끌었다. 소녀역의 이지현도
요정처럼 다가와 초저녁 별 같은 초롱초롱함으로 객석에 영롱함을 전했다.
김대한의 무대디자인은 한 폭의 조형예술을 접하는 느낌이었고,
이유진의 조명디자인 역시 관객을 꿈속으로 이끌었다. 오수현의 의상디자인도 장치와 조화를 이룬 색상이었고, 채송화의 분장, 윤민희의 조연출과
음향오퍼레이터, 김병수의 조연출과 무대감독, 최상윤 기획PD, 박지원의 진행, STAGE YAH의 무대제작, 다홍디자인의 편집, 김종범의 사진
등 모두의 정성이 돋보여,
예술감독 정한룡, 프로듀서 유인수, 극작 최명숙, 연출 안경모의
<그리고 또 내일>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8)극단 竹竹의 김원태 원작
김낙형 각색/연출의 <기름고래의 실종>(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는 선실의 바닥이라는 느낌의 네 개의 철제 조형물로 된 기둥이
안으로 굽어져 서있고, 역시 선실 내부로 보이는 벽이 배경 막 가까이 펼쳐져 있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드럼통과 버킷, 그리고 장비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왼쪽 벽 가까이 조리대와 커다란 양푼과 식칼, 그리고 그 옆에는 음향기기가 놓인 것이 보인다. 중앙의 벽 앞으로 옷걸이에 걸린 산뜻한
재킷상의와 프렌치코트가 눈에 띄고, 그 오른쪽으로 선실의 비밀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무대 왼쪽에는 안으로 굽으러져
갑판위로 올라가는 등퇴장 로가 나있고, 그 앞으로 철제 기둥에 쇠사슬을 묶어 늘어뜨린 게 눈에 띈다. 천창에서 광선이 내리 비추는 공간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파 같은 채소를 옹기종기 심은 것이 보이고, 텃밭 앞으로 객석 가까이에는 간이침대 한 대가
놓여있다.
도입에 기계마찰음과 함께 극이 시작되면 간이침대에 잠들어 있는
사나이가 그 소리에 깨어 일어나고, 마침 빈 플라스틱 음료수 병들을 투명한 비닐자루에 잔뜩 담아들고 등장하는 선원을 맞이한다. 이후 계속
등장하는 선원들과 선장에 이르기까지 사나이를 선생이라 호칭하며 극진히 대하는 모습이 여느 배와는 눈에 띄게 다르다. 그들 중 젊은 선원은 음식을
만들어 사나이에게 대접을 하며 호의를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사나이는 무슨 까닭이었는지 물에 빠지게 되었고, 익사직전에 바로 이 고래잡이배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선장은 인공호흡으로 사나이를 살렸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사나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던 인물이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여하튼 사나이는 이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이들의 작업을 적극 돕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선원들은 사나이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만류한다. 사나이는 텃밭에 물을 주면서 선원 하나하나와 친분을 맺는다.
장면이 바뀌면 새 인물이 이 배에 탑승을 하게 되고, 새 인물은
선원들과는 달리, 사나이에게 거칠게 대한다. 차츰 사나이의 기억상실과 맞물려 사나이가 기름고래의 먹이 감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향후 사나이는
쇠사슬에 묶여 기름고래의 먹이가 될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사나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지와 함께 선원 하나하나를 설득해,
기름고래는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며, 선장에게 반기를 들도록 종용한다. 사나이의 설득이 주효해 선원들은 선장에게 반기를 든다. 그리고 선장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등 항해사를 기름고래의 먹이 감으로 바다에 집어 던진다. 그러나 일등항해사가 바다 위를 떠돌다가 생존해 다시 배로 돌아오게
되니, 기름고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된다. 사나이의 종용으로 선원들은 이번에는 선장을 쇠사슬에 묶으려 한다. 그러나 선장은 쉽게 묶이지
않고, 삼등항해사의 조력으로 무위로 끝이 난다, 대신 사나이와 합심을 했던 이등항해사가 기름고래의 먹이로 끌려 나간다. 사나이와 선장의 기름고래
존재유무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선장은 끝내 존재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단원에서 거친 기계의 마찰음 소리와 더불어 기름고래의 접근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원들은 물론 관객모두의 긴장 속에서 굉음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정성호, 하성광, 김태훈, 백진철, 이창수, 주시원, 곽정환 등이
출연해 각자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도입부터 대단원까지 극에 몰입을 시켰고, 손호성의 무대, 주성근의 조명, 김동욱의 음악, 김미나의
의상, 장미향의 조연출 등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여, 모슈컴퍼니의 이보희와 이지은 기획한 김원태 원작, 김낙형 각색/연출의 <기름고래의
실종>을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중 걸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9) 창작집단<혼>의
국민성 작 박병수 연출의 <인형의 歌>(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이 연극은 1921년 입센의 <인형의 집>을 읽고,
나혜석이 쓴 <인형의 家>라는 노랫말대로 노래 가(歌)자를 제목으로 붙여 <인형의 歌>라고 제목을 정하고, 나혜석의 그림과
사랑,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가상의 인물인 장민호라는 기자를 등장시켜, 그의 눈을 통해 들어난 나혜석의 모습을 하나하나
엮어나갔다. 나혜석의 일대기를 공연하기위해 작가와 연출가가 만나 나혜석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이국에서의 사랑을 두고, 두 사람의 견해가
다름으로 해서 벌이는 갈등도 나혜석의 일대기에 복선으로 깔고, 거기에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공연이었다.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경기도 수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진명여자고등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오빠 나경석은 자신의 친구 최승구(崔承九)를 나혜석에게
소개하였다. 조혼(早婚)해 아내가 있었으나, 최승구와 나혜석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최승구는 폐병으로 사망하니, 나혜석은 그림그리기에
전념했다.
1919년 나혜석은 3.1운동에 가담하고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에
앞장섬으로써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석방이후 나혜석은 모순된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고, 일본 유학생 김우영(金宇英)의
구애를 받아들여 1920년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1921년에는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조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1926년 남편 김우영과 함께 한 3년간의 유럽여행 중 천도교
선도자 최린(崔麟)을 만나게 되고,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의 친구인 최린에게 유혹되어 불륜을 맺고, 이혼을 당하게 된다. 그 후 화가로서의 삶에
더욱 매진한 나혜석은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원'으로 특선하고 이 작품으로 일본에서도 제국미전에서 입선한다. 1935년
나혜석은 서울 진고개(충무로) 조선관에서의 개인전 실패와 아들 선이 폐렴으로 죽자, 불교에 심취한다. 승려생활을 매력을 느껴 수덕사 아래
환희대(歡喜臺)에서 오랜 동안 머물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지는 않았다. 이후 상경해 한때 청운양로원에 수용되기도 했고, 1948년 시립
자제원(慈濟院)에서 생을 마감했다. 1918년 <경희> <정순>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해 소설가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대표적인
회화작품으로는 <나부1928>, <선죽교 1933>가 있다.
탤런트 나문희 씨의 고모(姑母)로, 나혜석은 젊은 시절 아름다웠던
나문희 씨의 모습과 흡사하다.
무대에는 배경 막에 커다란 나혜석의 초상화가 부착되어 있다. 무대
좌우에는 역동적인 소조상(塑造像)이 있는데, 실은 마임이스트처럼 4인의 남녀 무용가가 정지 상태로 서있는 모습이다. 소조상의 4각 받침대는
천정에서 내려온 수많은 가는 아크릴선과 연결되어있어, 무용가들의 몸짓에 따라 소조상은 변형을 이룬다. 정면의 초상화는 좌우로 갈라져 나혜석의
등장 로로 사용이 되고, 무대바닥은 왼쪽이 한단 높이로 되어있어, 장면변화에 따라 바닥이 좌우로 갈라져 짙은 농무 속에서 무용가들이 틈새사이를
상여를 메고 통과하기도 한다. 무대에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이젤과 화필이 그리고 펜싱 검 등이 무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배경 막 오른쪽에 신디사이저와 대금과 소금, 그리고 해금 연주자의
모습이 간간히 불빛에 드러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백색분장과 백색의 간편한 의상차림의 무용가들이 소조
대 위에 조각상처럼 서 있다가,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춤추듯 신체를 움직여, 변형된 모습의 소조 상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훤칠한 미남인 작가가 등장해 나혜석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공연하려
했으나 극의 내용을 두고 작가와 연출가의 의견충돌로 결국 희곡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해설과 함께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연출가가 등장하고,
연출가와 작가의 대면은 펜싱 검의 눈부신 결투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에게 연출가는 나혜석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 진실한 희곡을 쓰라며 알듯 모를
듯한 주문을 한다. 곧이어 배경 막에 부착된 나혜석의 초상이 좌우로 갈라져 열리면 절세의 미녀이자 천혜의 예술가 나혜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향후
나혜석은 객석을 매혹시키고,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킨다. 장면변화나 주인공들의 심리변화에 따라 무용가들이 동조하듯 벌이는 마임과
춤사위는 연극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2인의 남성연기자가 나혜석의 남편 역과 애인 역 그리고 기자 역 등 나혜석 일대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역을 번갈아 해가며 호연을 펼치니, 관객은 시종일관 극에 몰입하게 되고, 관객자신도 동시대의 인물인양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나혜석의
사랑과 이별이 극중 내용으로 펼쳐지고, 나혜석의 아들의 상여가 무용가들에 의해 운반되고, 짙은 농무 속에서 비장 침울한 음악과 함께 상여가
갈라진 무대의 틈새 한가운데로 내려설 때에는 지구의 중심부로 내려가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들었고, 도입부 소조대의 움직이는 조각상과 후반부의
가옥의 방화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혜석의 화려했던 데뷔시절 그녀를 취재했던 장민호라는 기자가
나혜석이 말년에 사람들에게 도외시되고,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펼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찌 가정과 자식을 버리고,
예술을 빙자한 향락을 쫓아 떠날 수 있었는가를 묻자, 나혜석은 분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니, 기자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등잔불을 던지고,
그 결과 방화가 일어나 나혜석의 작품은 집과 함께 소실되고 만다.
대단원에서 아들 같은 기자의 품에서 애처롭게 숨을 거둔 나혜석의
모습 주위로 무용가들의 춤사위가 펼쳐지고, 그들이 연극의 도입에서처럼 소조대로 들어가 정지 상태의 조각상이 되면 연극은 마무리를 하게
된다.
김태훈, 우현주, 정의갑이 출연해 일생일대의 열연으로 객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예술감독 차태호, 제작감독 이재성, 조연출 최서은과 서 철,
무대대자인 권 용, 의상디자인 장혜숙, 조명디자인 정진철, 무대미술 임 민, 음악감독 강순탁, 안무 배강원, 영상감독 이종훈, 연주 강순탁,
김진이, 김태정, 이세미, 안무 정희담, 신지연, 유재성, 김동훈, 소품 정호준, 조명오퍼 강지원, 음향오퍼 강다영, 촬영 서울사진관, 기획
홍보 이하나, 주슬기 등의 기량과 노력이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켜, 국민성 작 김범수 연출의 <인형의 歌>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2
기획초청공연
(1) 극단 가변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성구 연출의 <햄릿이야기>(설치극장
정미소)
무대는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피라밋 형태의 철제 조형물이 자리를 잡고 있어, 어린이들이 수많은 사각형의 공간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기어들어가거나 나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극장을 들어서면 어린이들이 피라밋 조형물에서 노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연극이 시작되면 검은 상복의 햄릿이 등장해 어린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곧이어 호레이쇼의 등장과 햄릿과 놀이기구를 오르내리며 우산을 검처럼 사용해 벌이는 대결은 하나의 볼거리가 되고, 장쾌한 음악과 함께 왕비
거트루트와 신왕 클로디우스가 폴로니우스를 비롯한 수행원들과 함께 등장, 왕비와 신왕은 놀이기구 꼭대기로 올라선다. 두 사람의 결혼이 발표되고,
숙부인 신왕은 햄릿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호칭하도록 이른다. 모든 아들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어머니의 정절 훼손이 햄릿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였고, 부왕이 죽은 지 얼마 아니 되었는데, 숙부의 품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햄릿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대며 자신이 시해 당했다고 부르짖는 부왕 망령의 처절한 음성은 환청처럼 계속이 되고, 그 소리는 객석까지 깊이
스며든다.
3막 1장의 명대사인 사느냐 죽느냐가 햄릿 뿐 아니라, 작중인물로
설정된 한 노인의 대사로도 반복이 되고, 노인은 액자를 통해 세상을 보라는 듯 자신의 얼굴 가까이 액자를 가져다 댄다.
정권변화에 따르는 선왕의 아들을 보호하려는 호레이쇼의 충성심이
부각되고, 연인 오필리어에게까지 어머니처럼 부정한 피가 흐르는 것으로 생각한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수도원으로 가라고 하는 광적인 외침은,
오필리아로서는 난데없이 울리는 마른하늘의 천둥과 벽력이 아닐 수 없다.
광대패의 등장으로, 햄릿이 부왕망령의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부왕의 시해장면을 광대패의 어린이극으로 재현시킨다. 앙증스럽고 귀여운 모습으로 선왕을 죽이는 장면이 연출되고, 이를 관람한
신왕은 소스라쳐 놀라며 벌떡 일어나지만,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퇴장한다. 이 광경을 주시한 햄릿은 부왕이 암살되었음을 확신한다. 신왕의 햄릿을
처치하려는 의지가 표명되고, 왕비는 햄릿을 보호하기 위해 폴로니우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육체로 유혹한다. 두 사람의 성 접촉 장면이
햄릿에게 발견되고, 햄릿의 분노폭발로 폴로니우스는 햄릿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왕비의 변명은 햄릿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한편 자신에게는 물론 아버지에게까지 저지른 햄릿의 광폭한 행동으로,
오필리어는 실성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귀국한 레어티즈에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누이까지 자살토록 이끈
햄릿은, 철전지 원수가 아닐 수 없다. 신왕 클로디우스는 이러한 레어티즈를 부추겨 햄릿과의 결투를 종용하고, 결투장에서의 햄릿에게 독약까지 먹일
계획을 세운다.
대단원에서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홍색의 딱지치기로 시작이 되고, 곧이어 우산을 검처럼 사용해 벌이는 대결이, 피라밋 형태의 놀이기구 아래위를 뛰어다니며 곡예를 하듯 펼쳐지고,
왕비는 신왕이 햄릿에게 마시게 하려고, 술잔에 넣은 독 바른 진주 술을 햄릿 대신 마시고 쓰러진다. 레어티즈 역시 우산 끝에 바른 독으로 햄릿을
찌르고, 같은 우산에 찔려 숨을 거두며, 신왕의 음모 전모를 밝힌다. 햄릿은 신왕을 죽이고 자신도 역시 숨을 거둔다. 그때 격렬한 총기의
발사음과 함께 호레이쇼가 왕자의 안위를 위해, 군대를 대동해 등장하지만, 이미 사태가 돌이킬 수 없다는 상황판단을 하고, 국가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대단원에서는 서장과 마찬가지로 종장에서도 노인이 등장해, 사느냐
죽느냐를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햄릿을 깨워 놀이기구 위로 올라가 앉도록 이른다. 햄릿의 미소 띠운 얼굴을 기념사진으로 촬영하는 장면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강화영, 정종훈, 문창완, 김동현, 임정은, 박원빈, 조예현,
박혜영, 배우진, 임형섭, 진종민, 김대현, 양원석, 유정훈, 장동식, 이영훈, 김휘연, 송지나, 장호준, 김두율, 조은형 등이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으로, 일순의 유예도 허하지 않고 관객의 시선을 시종일관 극에 고정시켰기에, 원작을 한 단계 상승시킨 공연이라
평하겠다.
예술감독 송형종, 조연출 김유진, 무대감독 김종훈, 무대디자인
이윤수, 조명디자인 박원강, 움직임 이상철, 작곡 김현림, 사진 강 현, 의상디자인 김정향, 음향디자인 백광두, 포스터디자인 박정민, 포스터촬영
박성연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여,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성구 연출의 <햄릿이야기>를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극단 가변과 이성구 연출의 차기작에도 주목을
한다.
(2) 서울연극제 기획초청공연
극단 장자번덕의 정가람 작 이훈호 연출의 <바리 서천 꽃 그늘아래>(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 연극은 바리데기설화를 총체극으로 꾸며 2011년 전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고, 제33회 서울연극제 기획초청공연작으로 선정되었다.
극의 내용은 임금이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는다. 이에 실망한 왕과 왕비는 일곱 번째는 꼭 왕자를 보기 위하여 온갖 치성을 다 드리지만 일곱째 아이도 역시 공주다.
이에 노한 대왕은 일곱 번째 공주를 옥함에 담아 강물에 띄워 버린다. 아기는 석가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자라난다.
바리공주가 15세가 되던 해에 대왕마마가 병이 든다. 청의동자가 대왕마마의 꿈속에 나타나 하늘이 정한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 준 무장신선의 불사약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이에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게 된다. 바리공주는 아버지의 불사약을 구하러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로 간다. 그곳에서 무장신선을 만나 불사약을 받는 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 긷기 3년, 불 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아준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이미
대왕마마는 죽어 있다. 바리공주가 가지고 온 불사약과 꽃 덕분으로 다시 살아난 대왕마마는 공주의 소원을 들어 만신의 왕이 되게 하고, 무장신선은
죽은 사람의 길에서 노제를 받아먹도록 배려하고,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되게 한다.
이 극은 북 장구 꽹과리 대금 등 전통악기 연주에 맞추어 출연자들이
꼭두각시 탈을 쓰고 연희를 펼치고, 전통 탈춤 한마당과 학춤 같은 고품격 춤과 노래를 곁들여 무대를 시종일관 흥미 100%로 이끌어
간다.
흡사 당집 같은 장치가 무대를 신비로운 분위기를 창출해 내고,
대단원에서 망자의 길로 상징되는 흰 광목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질펀한 굿판으로 연출된다.
장은주, 차병배, 김수희, 구민혁, 추은경, 김동현, 정영만 외
11명이 출연해 열연을 펼쳐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예술감독 정영만, 무대감독 이선희, 조연출 신지훈, 움직임디렉터
고재경, 음악작곡 황윤희, 의상 및 소품디자인과 제작에 김민경, 소품제작에 서정인과 김다정, 안무 이수정, 무대디자인 한남숙, 무대제작에
황상구, 조명디자인 이정훈, 조명기술자문 여국군, 조명운영 유민규, 음향운영 알파사운드 등 스텝진의 기량이 극에 투입되어 정가람 작 이훈호
연출의 <바리 서천 꽃 그늘아래>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3) 문화예술교육 더베프의 팀
크라우치(Tim Crouch) 작 브리기테 데티에르(Brigitte Dethier) 연출 유진우 협력연출의 <쉬반의 신발(Shopping
for Shoes)>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쉬반의 신발>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연극이다.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여인이 기타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율동과 함께 펼쳐가는 극이다.
대학로예술극장 3층에 자리한 대극장을 계단으로 올라가면, 난간에
실제 신발 크기의 열배이상이나 되는 커다란 신이 계단난간에 부착되어 있고, 대극장 문 앞에는 상자 곽 위에 각양각색의 운동화가 제 모습을 뽐내고
있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무대중앙에는 낮은 키의 전봇대 2개가 갸웃 둥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앞으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신발상자 곽은 마치 양봉하는 집의 벌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대왼쪽에는 악기와 연주자의 모습이 보이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등장하면 악사는
여배우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맞춰 기타를 연주한다. 여배우는 모노그라마를 하듯 또는 팬터마임을 하듯, 그 모습처럼 밝고 명랑하고
아름답게, 1인 다 역의 어린이 역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1시간가량의 극을 발군의 기량으로 이끌어
간다. 여배우는 처음 대면하는 남녀 어린이의 서먹서먹함에서부터 차츰 서로에게 관심을 나타내 보이는 장면을 모노드라마로 연기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로 극이 전개되면서 차츰 남녀 어린이는 가까워지고, 여학생은 남학생의 집에까지 함께 가기에
이른다. 남학생은 이름난 신발메이커의 집 아들이기에, 많은 운동화를 가지고 있고, 최고급 운동화를 여학생에게 보여주며 운동화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밝고 명랑하고 예쁘기까지 한 여학생에게 남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대단원에서 남녀 두 학생은 많은 운동화 더미위에자신의 운동화를 훌훌
벗어던지고, 다정한 모습으로 퇴장하는 장면에서 극은 마무리가 된다.
전현아가 출연해 놀라운 기량으로 1인 다 역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안기덕과 박봉석이 연주자로 등장해 능수능란한 연주로 극의 분위기를 100% 살리며 이끌어간다.
이윤수의 무대미술, 미하엘 슈타우다허의 작곡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팀 크라우치 작, 브리기트 데티에르 연출, 유진우 협력연출의 <쉬반의 신발>을 성공작으로 이끌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청소년 연극
<쉬반의 신발>을 관람하도록 권한다.
(4) 극단 소금창고&극단
비락의 오타 쇼고 작 기무라 노리꼬 역 이지영 연출의 <빈:터-sarachi>(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오타 쇼고(太田省吾·1939~2007)는 1992년에
<사라치>를 발표해 일본에서의 초연이후 2000년에는 명배우 남명렬과 김수기가 출연해 우리나라에서 초연되었고, 2009년 1월에는
충남대 연극동아리에서 남명렬이 연출과 출연을 맡아 재 공연되었다. 2009년 11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빈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남명렬과
권남희가 출연한 해외공연이 있었고, 2012년 5월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으로 극단 소금창고와 극단 비락이 합작한 이지영 연출의 남명렬과 이정미가
출연하는 <빈:터-사라치>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그 위용을 들어냈다.
무대는 바닥전체에 가로 선을 넣은 넓은 마루를 깔았고, 배경전체를
검은 색 으로 장식했다. 무대 전면 객석 가까이에는 라디오와 나무문틀, 사각형의 길고 짧은 나무기둥 12개, 변기, 플라스틱 화분, 시멘블록
10여개, 그리고 조리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 놓여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초로의 부부 두 사람이 무대 왼쪽에서 등장,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듯한, 느린 걸음으로 배경 막 방향을 향해 움직인다. 남편은 희랍의 조각상 같이 윤곽이 뚜렷한 얼굴과 훤칠하고 늘씬한 키의
서구적인 체형의 미남이고, 부인은 단정하고 이지적이며 정감어린 모습의 동양적인 미인이다.
부부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폐허로 변한 옛집을 찾아온듯하다. 두
사람은 기억을 더듬으며, 안방과 거실을 나무기둥이나 시멘블록을 옮겨다 놓고, 옛 모습을 재현시키려는 듯 애를 쓰지만, 자재나 공구도 없고,
나이든 사람으로서는 다시 세운다는 것이 역부족이다.
두 사람은 식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펴고 비빔국수를 먹으려 한다.
그런데 젓가락이 없다. 부부는 서로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손으로 집어 국수를 입에 집어넣는다. 차츰 어둠이 다가오고, 칠흑 같은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부인이 동심으로 돌아가 노래를 부르고 어린이처럼 몸을 깡충거리니, 남편도 이에 동조하며 즐거움을 함께 한다.
부부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내뱉는 말이 부부 자신의 추억담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부인은 남편에게 업어달라고 청한다. 남편이 허리를 구부리니 부인은 지체 않고 업힌다.
어린아이처럼 등에 업힌 부인의 양다리를 조심스레 감싸고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는 남편의 모습은 천하에 금실 좋은 부부를 다 데려와도 부럽지 않은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객석은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로 파고를 일으킨다. 등에서 뛰어내린 부인이 문틀을 번쩍 들고, 남편에게 뭐가 보여요? 하고
묻는 모습은 그 독특함으로 해서 기억에 남는다. 남편은 돌연 커다란 두루마리 천을 가져다 공터를 덮는다. 부부는 백색의 천위에 뒹굴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한 동한 어린이처럼 백색의 놀이터에서 한적한 즐거움을 영위한다. 부인은 천 밑으로 기어들어가 라디오를 꺼내오고,
음악소리에 맞춰 댄스스텝을 밟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향후 남편에게 청하는 평범한 일 하나 하나와 두 사람이 풍상을 함께 이겨 낸
대화는, 어느 사상가나, 철학자, 그리고 심리학자 못지않은 진솔한 대화로 객석에 전달이 되고, 객석은 공감대와 함께 노부부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남편의 등에 다시 업힌 부인이 조용히 내려서서 서로의
눈동자를 신뢰와 사랑으로 마주 바라보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가슴과 뇌리에 각인되는 명장면이었다.
남명렬과 이정미가 바로 이 연극을 위해 태어난 듯, 서정적인
분위기와 정서감 만점의 호연을 보였으며, 지경화의 조연출, 나이토 레이의 무대디자인, 이주환의 조명디자인, 정현기의 무대감독, 박창수의 음악,
이명아의 의상제작 , 이도희의 사진, 오치규의 그래픽디자인, 기무라 노리꼬의 코디네이터, 박으뜸의 마케팅, 하정아의 영상 등 모두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오타 쇼고(太田省吾) 작, 기무라 노리꼬 역, 이지영 연출의 <빈:터-sarachi>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상기한 9개의 공식참가작 중에는 창작초연작품과 재 공연작이
포함되었고, 재 공연작이라도 작품과 연출에서 새로운 시도와 변형을 보였기에 창작과 다름이 없다.
공식참가작 중에는 자유분방한 주제와 대담한 표현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포함되어있어, 이번 서울연극제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4개의 기획초청작 중에는 외국작가의 작품이 포함되었고, 그중에는
침묵 극을 창안한 일본작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변화에 앞장서는 서울연극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세계미술사에 많은 유파와 사조가 창립이 되었으나, 미켈란젤로나
렘브란트, 또는 루벤스의 작품에 현대 화가들의 그림수준이 현저히 미치지 못하듯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연극제에서 셰익스피어에 비견될만한
걸작이나 명작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2012년
5월 12일 박정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