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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르 연극(드라마전시), 연극(스릴러), 연극(가족극), [테마] 연인 또는 부부, [테마] 퇴근 후 직장인들, [추가분류] 초연, [추천연령] 30대, [추천연령] 40대, [추천성별] 전체
공연일자 2012-05-04(금) ~ 2012-05-27(일)
공연장소 아리랑아트홀
공연시간 평일 8시/토 4시,7시/일 4시 (월 쉼)
관람등급 만 17세 이상
출연자 정일균, 고서희, 박경옥, 안영주
티켓가격 20,000원
러닝타임 100분
제작 주최,주관: 극단 주변인들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밀레21
공연문의 070-7555-7195
홈페이지 http://club.cyworld.com/mptoo
할인정보 프리뷰할인(20%,5/4~5공연에한함) 조기예매(20%,~4/26일까지예매시) 청소년(25%,본인에한함) 대학생(20%,본인에한함) 장애인.국가유공자(50%,동반1인까지) 부부동반(20%,2인예매시) 단체관람(20%,20인이상예매시) 지역할인(20%,성북구주민에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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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주 - 연극 토스카나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주 - 연극 토스카나

최고 관리자 / 2012-06-21 / 조회수 8219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주 - 연극 토스카나


라시내(TTIS 기자)


관람일시: 2012.05.20. 16:00

: 세르지 벨벨

연출 : 서충식

출연 : 정일균, 고서희, 박경옥, 안영주

공연장소: 아리랑 아트홀



여기 오래된 연인 혹은 부부가 있다. 둘은 죽고 못 살게 사랑했지만어쩌면 지금도 사랑하지만이제는 서로가 참을 수 없이 지긋지긋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이유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변해버린 상대방을 단 한 순간도 견디기가 힘들어졌을 때, 사랑은 악몽이 된다. 변해버린 사랑이 죽을 만큼 괴롭지만 이 악몽에서 깨어난다면, 사랑을 잃는다면 그 또한 삶이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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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와 조아나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예전에 둘이 가장 행복했던 장소인 토스카나에 다시가기로 한다. 기대에 부푼 마르크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전화벨이 울리고, 마르크는 조아나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소리쳐 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아나는 없어졌다. 아니, 분명 조아나는 무대 앞쪽 침대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데 마르크는 조아나가 없어졌다고 한다. 초조해하고 당황해하는 마르크의 모습과 조명의 변화가 맞물려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무대를 감싼다. 잠시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명과 함께 마르크가 욕실에서 쓰러지고, 이 때 조아나가 문득 일어나서 욕실로 다가서면 마르크가 해골을 들고 일어나서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묻는다. 조아나가 대답한다. “어디 당신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 나 뿐이겠어?”


암전이 극중 시공간을 뛰어 넘을 때 관객의 상상력은 그 시간의 비약을 채운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마르크가 죽은 건가? 누가 마르크를 죽였나? 조아나가 죽였을까? 어째서 마르크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많다고 하는 걸까?’ 등을 궁금해 하며 극을 따라갈 채비를 하는 사이,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 마르크는 바에서 친구 라울과 토스카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라? 마르크가 죽지 않고 토스카나에 다녀왔군?’,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이런 식의 비논리적인 전개가 반복되면서, 관객은 차차 어떤 장면은 마르크의 꿈이고, 어떤 장면들은 현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극의 중반쯤 되면 마르크가 악몽에 시달린다든가 꿈에서는 전화기가 울린다든가 하는 정보가 마르크와 조아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관객은 더욱 확신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연출적 배려는 조명의 활용으로 나타난다. 현실일 때는 자연광에 근접한 백색조명이, 꿈일 때는 붉은 톤의 조명이 사용되면서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주의적 연기와 과장되고 상징적인 표현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 톤의 변화도 이러한 구분을 용이하게 해 준다. 특히 조아나 역의 고서희는 현실의 조아나가 남편에게 지쳐가는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잘 표현해냈다. 서로 속에 쌓인 게 많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연인의 심리를 매우 현실적으로 포착한 대사와 이를 설득력 있게 살려낸 연기 덕분에, 뒤죽박죽인 서사가 언뜻 잘 이해가 안 되는 순간에도 그 상황의 호소력에 빨려 들어가 공감할 수 있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극의 전개가 다소 혼란스러우면서도 극을 이끌어 나가는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비논리가 인간의 의식과 기억, 욕망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와 조아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라울과 에바는 꿈과 현실을 오가는 속에서 반복적으로 토스카나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데, 그 때 그 때마다 마르크의 대답은 다르다. 이것이 매번 다르다는 점이 논리적으로는 이상하면서도 극의 맥락 속에서 크게 이상하지가 않다. 사실 사람들은 매 번 같은 질문을 받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혹은 기분에 따라서, 대화하는 대상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르게 말하게 마련이지 않은가?


꿈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정보들 또한 극중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마르크는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지를 받지만, 사실 죽을병에 걸린 것은 라울이다. 마르크는 에바로부터 조아나가 얀이라는 이름의 내연남이 있다고 듣지만, 나중에 얀은 에바의 연인으로 밝혀진다. 기억 속에서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바뀌거나, 세부적인 내용이 왜곡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두 번 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기억이 현실과 어긋날 때, ‘? 내가 꿈을 꿨나?’ 하는 생각도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마르크의 무의식과 의식이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지점에서 관객들은 잘못된 정보의 수정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감과 동시에, 그렇게 잘못 기억하고 잘못 꿈꿀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심리를 짐작하게 된다. 마르크의 꿈에서 라울이 아니라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뒤바뀐 것은, 우울과 무기력, 의심으로 점철된 병적인 정신 상태에 대한 마르크의 자기 인식인 것이다.


환상 속에서 마르크의 주변인들은 철저하게 마르크가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마르크의 시선 속에 마르크의 욕망이 드러난다. 조아나에게 얀이라는 내연남이 있다고 에바가 마르크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에바가 마르크를 유혹하는 것처럼 에로틱하게 그려진다.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내용 자체는 조아나가 외도를 한다는 의심을 반영하고, 에바를 성적 대상으로 표상하는 것은 마르크가 대체물을 갈구해야할 만큼 욕망이 충족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욕망의 결핍에 따른 불만은 환상 속에서 목을 졸라 죽이는 등의 폭력으로 해소되거나, 무의식의 세계에서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해소된다. 마르크는 꿈속에서 전쟁통에 위험에 빠진 조아나와 에바, 라울을 구해준다. 꿈속에서라도 어떻게든 관계의 위기를 해결하고 조아나의 영웅이 되지 않으면 마르크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어디서 본 듯하게그려지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한다. 때로는 에로틱하게, 때로는 스릴러물처럼, 때로는 유쾌하게 나타나는 환상의 변주는 특정한 연출 코드를 가미하지 않고 그려지는, 다분히 심각한 마르크의 현실과 대비되면서 연극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10분 동안 마르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마르크는 변했다. 그 후로 마르크와 조아나의 사이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마르크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악몽은 전화와 관련이 있다. 마르크는 조아나가 바람을 핀다고 의심한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일련의 정보들을 조각조각 알아낸 관객들에게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토스카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크와 조아나는 토스카나에 다시간다.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스카나가 극의 무대가 된다.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10, 조아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르크는 조아나의 핸드폰에 남겨진 메시지를 듣는다. 단순히 잘못 걸린 전화일 수도 있고, 과거로부터 온 마르크 자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조아나의 내연남일 수도 있는, 그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목소리를 듣는다. 극의 자연스러운 시간 흐름을 따라서, 갈라섰던 마르크와 조아나가 라울의 유언대로 다시 잘 해 보기로 했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장면은 연극의 에필로그가 되고, 이들은 세 번째 토스카나에 간 것이 된다. 또한 관객들은 이 장면이 예전에 둘이 토스카나에 두 번째로 갔을 때의 일을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보여준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연극은 관객의 해석을 열어 놓는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모든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이미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두 시간 여 동안 펼쳐진 연극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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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를 쓴 세르지 벨벨(Sergi Belbel)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로, 현재 까딸루냐 국립극장(Teatre Nacional de Catalunya)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이번 연극을 통해서 동시대 작가의 흥미로운 희곡을 접하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와 삶과 죽음의 문제, 현실과 비현실의 문제가 복잡하면서도 느슨하게 얽혀 있는 텍스트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무대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연극 <토스카나>는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무의식이라는 큰 줄기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비논리적인 텍스트에 대한 굉장히 논리적인 접근이었다. 특별히 뛰어난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은 없었지만, 개개의 장치들이 극의 구조를 밝히는 데 충실히 기여하면서 희곡이 원래 가진 골격을 잘 드러냈다. 현실과 비현실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정형화해서 제시하는 방식이 이러한 잠재적 해석의 두께를 납작하게 만드는 측면은 분명 아쉬웠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어디까지를 중층적으로 제시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에 따라 가중될 수 있는 관객의 혼란을 감수해야하는 것이고, 이에 따른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앞뒤가 잘 맞는 이야기의 구성 방식에 관습적으로 이미 익숙한 관객들은 혹시 연극이 낯설고 어렵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려워서 지루하다고 느낀 관객은 없었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연극 토스카나

연극 토스카나

최고 관리자 / 2012-06-21 / 조회수 8053

연극 토스카나

 

이예은 


관극 : 2012. 5. 27(일)

공연장 : 아리랑 아트홀

작 : 세르지 벨벨

연출 : 서충식

출연 : 정일균, 고서희, 박경옥, 안영주

 

마르크는 자신이 원하던 직업, 사랑하는 부인, 좋은 친구들 등 행복의 모든 요소를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인 조아나와 함께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난 그는 여행의 마지막 십 분 동안 알 수 없는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작품은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나는 마르크와 조아나의 시점에서 시작해서 바로 여행을 하고 돌아 온 마르크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극은 마지막 장면에 이를 때까지 마르크 자신 뿐 아니라 관객들 모두에게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십 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된다.

극은 작품의 갈등과 고민과 질문의 시작점인 그 마지막 십 분을 불명확한 상태로 비워 둔 채 그 십 분을 에워싼 세계와 시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물음표로 제시된 극의 시작점이 그 의미를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인데, 결국 작품에서 말하고 보여주려 하는 것은 해답 자체가 아니라 그 답을 찾아가기까지의 것들이다.

마르크는 조아나의 핸드폰 벨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질적인 세계와 이질적인 시간으로 침투하는 경험을 한다. 그 이질성은 마르크의 무의식 혹은 왜곡된 기억, 불온한 상상력에서 발로한 것일 수도 있겠고, 극의 후반부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사실은 바로 매우 가까운 사람-라울-이 경험하고 있던 친연적인 현실의 대리 투영일 수도 있겠다.

현실과 비현실, 혹은 현실과 또 다른 현실 사이에서 사투하는 마르크의 몸부림은 결국 현실 세계의 모든 것들을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끔 만든다. 결국 조아나가 떠나가고, 직업도 가장 친한 친구도 잃는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제시된 왜곡된 틈의 순간들로 결국 현실적 조건들을 모두 비틀어져 버리고 마는데, 이 마지막 시점에서 이르러서야 비로소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십 분이 장면으로 제시된다. 그 장면에서는 이제껏 마르크의 의식선의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두 가지 연출 도구인 조아나의 핸드폰 벨소리와 달팽이 모양의 조명 고보가 도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채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을 어지럽게 난교시킨다. 그리하여 토스카나에서의 십 분을 두고 그것이 의식이냐 무의식이냐를 질문해 왔던 이 작품의 시간은 결국 이 두 세계 사이의 경계 자체를 소멸시킨 시간으로 끝을 맺는다.

마르크가 경험한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십 분은 어느 순간에라도 튀어나올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인생에 잠입해 있는 염증의 가능태들이다. 또한 그것은 세계와 세계 사이의 틈을 벌이는 균열의 순간에 대한 메타포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망연한 공기, 그 공기 중에 늘 잠입해 있는 각성의 순간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추락하게 만드는 순간들. 존재와 부재, 현재와 기억, 현실을 이루고 있는 삶과 그 이면의 빠뜨려진 것, 나의 것과 그 이상의 것 ‘사이’를 벌여 놓는 순간들...

그 순간들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순간들은 불현듯 이제까지의 시간마저도 그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 순간들은 모호함의 아우라로 일상과 현실의 질서를 비트는 것이다. 토스카나의 마지막 십 분이 마르크의 현실을 통째로 비틀어 버린 것처럼. 그러나 막상 그 구토의 순간이 삶 속에 틈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성의 힘으로 제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마치 마르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세계와 세계 사이의 틈을 벌여 놓는 어느 균열의 순간을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십 분’에 빗대어 보여준다. 공연 텍스트로서 이 작품은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장면들을 속도감 있게 교차시키며 그 균열의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그려 내었는데, 이러한 연출법은 대본의 실험적인 내러티브를 오히려 평이하게 보여주었다. 세계상의 경계를 정형화된 코드들-동일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와 달팽이 모양의 조명 고보-로 반복적으로 풀어낸 연출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세계의 경계 자체에 서 있게 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는 보다 불분명하고도 역동적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공간의 사용 역시 그러하다. 무대 전면에 놓인 침실과 무대 중앙 부 좌, 우에 놓인 거실과 바 공간은 현실적인 공간들을 대변하며 때때로 다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무대 후면에 놓인 스테이지 공간은 욕실 샤워 룸, 여기가 아닌 ‘저 편’의 공간 등으로 사용되었다. 무대 공간은 이렇게 구획화된 몇 개의 공간으로 분할되어 제각기의 장면에서 파편화된 내러티브를 독점하고 있었고, 다음 장면에서는 또 다른 구획의 공간에게 그 독점권을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의 정형화된 분할은 내러티브의 역동성을 지나치게 정리 정돈할 뿐 아니라, ‘움직임’으로서 내러티브를 끌어나가야 하는 배우들이 그려내는 몸의 동선, 그리고 그 동선을 좇는 관객들 시선의 동선을 차단시켰다. 내러티브가 무대에 구현될 때에 입체적으로 살아나야 하는 시각적인 역동성, 그리고 역동 안에서의 균형미가 창조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에서처럼 ‘오고 가는 것’의 힘을 믿는 내러티브의 구조를 풀어나갈 때에는 특히나 공간의 역동적인 연출법이 중요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흔들림을 의식한 텍스트인 만큼 시선의 흔들림을 공연의 무대 위에서 구현했더라면 더욱 작품의 의미가 풍성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씁쓸한 퍼즐 맞추기, 토스카나

씁쓸한 퍼즐 맞추기, 토스카나

최고 관리자 / 2012-06-21 / 조회수 8322

씁쓸한 퍼즐 맞추기

 

백소연 (이화여대 강사)

 

 

공연명 : <토스카나>

작 : 세르지 벨벨(Sergi Belbel)

번역‧드라마터그 : 김선욱

연출 : 서충식

출연 : 정일균, 고서희, 박경옥, 안영주

제작 : 극단 주변인들

공연기간 : 2012.05.04-2012.05.27

공연장소 : 아리랑 아트홀

 

 

어느 날 문득, 반복되는 삶에서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며 알 수 없는 불안과 환멸에 시달리게 되는 순간,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그런 혼란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스페인의 대표적 극작가 세르지 벨벨(Sergi Belbel)의 연극 <토스카나(Enla Toscana)>가 포착해 내는 것은 바로 그 흔들리는 감정과 일상의 모습들이다. 이 작품은 안락한 중산층 가정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오던 부부, 마르크와 조아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에게 급작스레 찾아 온 위기를, 현실과 환영, 또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남편 마르크에게 나타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부인 조아나는, 원인 모를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결혼기념일 선물로 이태리 토스카나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 거란 부부의 예상과 달리, 이후 마르크의 증세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며 둘의 관계 또한 점점 악화되어 간다. 그럼에도 상황을 그렇게 몰아간, 토스카나에서 벌어진 그들 사이의 일은 극 안에서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마르크는 끊임없이 원인 모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환영들은 현실에서의 삶마저 위협한다. 아내는 물론 주변 친구들에 대한 신뢰마저 점차 잃어가는 마르크는 매사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이러한 변화를 납득할 수 없는 조아나는 남편에게 지쳐만 간다.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절친한 친구인 라울과 에바까지 가세하여 도우려 하지만 무엇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결국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결책마저 찾을 수 없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마르크는 조아나와의 이별을 선택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 먼 여행지에 도달해서야, 그는 이제 자신이 평온함을 되찾았으며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자기 고백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시금 그 악몽은 시작된다. 마르크가 비로소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행복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다.

결국 떠난 지 이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뒤늦게 자신의 선택을 되돌려 보려 한다. 하지만 친구인 라울은 불치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내를 불신하게 만들었던 악몽에서의 일들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한 마르크는 죽은 라울의 유언에 힘입어 관계를 되돌리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에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아나에게 토스카나로의 여행을 다시 제안하려 든다. 하지만 토스카나로 돌아온 부부의 마지막 장면은 그것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혹은 현실인지 허구인지조차 모호하게 표현되면서 끝이 난다. 다만 마르크와 조아나 사이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임이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토스카나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진정한 삶과 소통에 대한 열망은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겨진 듯 보인다.

이처럼, 연극 <토스카나>는 인간의 삶과 관계에 대한 본질적 의문과 회의를 부부 관계 안에서 조망해 냄으로써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와 소재가 지니는, 난해하면서도 익숙한 지점들은, 도리어 연극이 취하는 단순한 구성과 진행 방식으로 못내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의 악몽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극단적이며 비논리적으로 그려진다. 물론,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으로 꾸며진 무대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횡단하는 네 배우들의 열연과 현실과의 엄청난 간극이 불러오는 희극적 재미들로 관객의 호응과 웃음을 끌어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무의식의 파편들은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으레 불러올 법한, 뻔히 예상 가능한 상황들을 재현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거나,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불치병을 판정받게 되고, 믿고 있던 아내가 버젓이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해 하며, 그에 분노해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다는 식의, 극 안에서 다루어지는 환영의 내용물들이란 다소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연극 안에서의 이러한 현실과 환상은 대체로 노골적인 장치를 통해 그 경계를 매우 기계적으로 구분해 내고 있었다. 마르크의 악몽이 시작될 때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리며 조명이 깜빡이고 주변 인물들의 말투와 태도는 급변한다.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하여 강조하는 이러한 예고들은, 오히려 의식과 무의식, 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긴장과 의미를 양분하여 단순화 시키고 있었다. “23장의 구성을 19장으로 줄이고 과한 정사 장면을 삭제하고 관객에게 쉽게 이해되게 지나치게 축약한 게 아닌가”라는 연출의 글은, 그래서 원작의 실체가 어떤 것일지 몹시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단서를 추정할 만한 현실적 문제들을 극 안에서 뚜렷이 유추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여행지에서 마르크가 쓰는 편지의 구절들, 일을 위해 투쟁하며 살았으나 인생이 가득 찼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고백만이 그가 느끼는 불안과 절망의 근원을, 아주 보편적이며 상투적인 방식으로 암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작가와 연출의 의도 역시 그러했겠지만, 명백한 이유에서만이 삶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들지 않는 한, 그 단절의 결과는 피상적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연극 전반에 깊은 공감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극 <토스카나>는 납득되지 않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관객들이 다시 짜 맞추어야 하는 흩어진 퍼즐”로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객 스스로 그 퍼즐을 온전히 맞추어 나가기엔 극 안에서 주어진 힌트들은 한없이 빈약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퍼즐을 맞추어 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어렵게 맞추어야 할 퍼즐의 그림이 정작 큰 흥미를 유발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토스카나>에 붙여진 ‘씁쓸한 코미디’라는 부제가, 공연장을 나오는 동안,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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