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 종료공연
  • 공연장
  • 공연단체

home 아카이브 종료공연

종료공연

영원한 평화

영원한 평화

영원한 평화

  • 영원한 평화
  • 영원한 평화
  • 영원한 평화

영원한 평화

twitter facebook me2day yozm

지역구분 대학로
공연장르 연극(고전명작), 연극(드라마전시), 연극(사실주의), 연극(풍자), 연극(낭독극), 연극(부조리극), [테마] 연인 또는 부부, [테마] 혼자 보기 좋은 공연, [테마] 퇴근 후 직장인들, [추가분류] 초연, [추천연령] 20대, [추천연령] 30대, [추천연령] 40대, [추천연령] 50대 이상, [추천성별] 전체
공연일자 2012-01-26(목) ~ 2012-02-12(일)
공연장소 아트센터K 네모극장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 3시,7시 / 일 3시 / 월 쉼
관람등급 만 9세 이상
출연자 백익남, 정선철, 이종무, 김종태, 이미지
티켓가격 25,000원
러닝타임 90분
제작 주최: 극단 코끼리만보, (주)원더스페이스 / 기획: 드림아트
공연문의 한윤선 010-3256-7987
홈페이지 http://dreamart.tistory.com
할인정보 단체할인(40%,10명이상)

예매종료

후기 대티가자단 [0]
웹진TTIS [1]
월간한국연극 [0]
기대평 [0]

작품정보 대티기자단 웹진TTIS 기대평

when

[/univticket/rbs/data/files] [ccontents][1][201201121306020.jpg]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1

철학자에 의한, 철학을 위한, 철학적 연극 <영원한 평화>

철학자에 의한, 철학을 위한, 철학적 연극 <영원한 평화>

최고 관리자 / 2012-04-19 / 조회수 6670

철학자에 의한, 철학을 위한, 철학적 연극

 

박연숙 (숭실대 교수/공연평론가)

 

작: 후안 마요르가

연출: 김동현

번역: 김재선

공연 기간: 2012.1.26-2.12

공연 장소: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출연: 백익남, 정선철, 이종무, 김종태, 이미지

관극 일시:2012. 2.4/ 2.8

 

  

스페인의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1965- )는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다윈의 거북이>(서울시립극단, 세종M씨어터, 김동현 연출, 김재선 번역)를 공연하여 주목 받은 바 있는 작가이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수학 교사였고,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철학 박사이며, 교수이다. 한국에서 공연되는 그의 두 번째 작품<영원한 평화> 역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지혜로 가득하다. <다윈의 거북이>에서는 인간이 된 거북이가 주인공이었는데, <영원한 평화>에서는 인간을 위해 일하는 세 마리의 개들이 주인공이다. 두 작품 모두 동물의 시선에서 인간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는 방식이 흥미롭다.

 

1. 세 주인공

 

  어둠 속에 세 마리(명)의 개(인간)가 자고 있다.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개라는 것은 그들의 대화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서야 알 수 있다. 개로 분장하지 않았고, 두 발로 걷고, 각자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옷을 입고 있고, 심지어 헤드폰까지 끼고 있으니 그들이 개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딘(정선철 분), 이마누엘(이종무 분), 존존(김종태 분)은 테러리스트 색출을 위한 요원 선발에서 최종 후보자 자격으로 처음 만나게 된 사이이다. 그들은 앞서 장애물 경주 시험이 끝난 후에 인간이 주입한 약에 의해 정신을 잃고 이 장소로 옮겨져 갇혀 있다. 이곳은 어둡고 2개의 출구가 있는 폐쇄된 장소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먹을 수 있고, 벽 높은 곳에 환기를 위한 팬 두 개와 금속성의 창틀이 보일 뿐이다. 감시 카메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따금 큰 소리의 음악이 들려오기도 한다.

세 마리의 개에게도 각자의 역사와 개성이 있다. 오딘은 미천한 출생이지만 타고난 감각과 뛰어난 계략으로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인간 주인을 위한 봉사의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쫓아 살아왔다. 값비싼 전문 교육까지 받은 젊고 혈기 왕성한 존존은 테러리스트 색출을 위한 최고의 기능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합된 새로운 종이며, 인간 주인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충직한 삶을 살아왔다. 이마누엘은 오딘처럼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존존처럼 체력이 탁월하지도 않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주인 덕분에 지혜를 사랑하고 스스로 사유하는 철학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맹인이던 주인 아가씨가 자신의 부주의로 테러를 당해 죽은 후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오딘과 존존, 이마누엘은 이 분야에서 전설이 된 카시우스(백익남 분)의 테스트를 받으며 각자의 능력과 가치를 드러낸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여 남은 단 한 마리에게만 요원의 자격으로 K7 목걸이가 주어진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세 마리의 최종 후보자들이 테러리스트 색출 요원이 되기 위해 K7목걸이를 두고 경쟁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배후에는 현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가 중심이다.

테러리스트 색출이라는 주어진 본분에 대한 세 주인공의 입장 또한 각자 다르다. 오딘에게는 누가 적이고 누가 테러리스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인간들에게나 중요한 것이며 자신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의 대가로 무엇이 지불되는지가 중요하다. 존존은 주입받은 대로 주어진 명령을 잘 수행할 뿐이라 누구를 적으로 판단할지조차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마누엘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며 숙고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대가에도 무관심하고 인간의 명령에도 맹종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재미는 세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단면을 발견하는데 있다. 주인에 의해 버림받고 불신과 이기심만 남은 오딘에게서 인간의 냉소와 탐욕을, 정해진 목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존존에게서 인간의 무지와 아둔함을, 합리적 판단을 위해 번민하는 이마누엘에게서 인간의 지성과 유약함을 발견하게 된다.

세 주인공들이 이 작품에서 개-인간 주인들과 맺은 관계는 개인-사회의 관계로 치환될 수 있다. 그들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억압하는 주인들 또는 예외적으로 친절한 주인은 우리가 우연히 마주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새로이 정하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우리의 적을 정한다. 개-인간의 관계는 다시 한 번 인간-신의 관계로까지 치환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신은 인간에게 무관심한 존재이다. 카시우스가 오딘에게 신에 대해 묻고 답하는 부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개 우리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놈이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러더니 후작부인의 대저택에 데려가 초콜릿을 먹이며 살을 찌게 합니다. 아니면, 실험실에 데려가 물약을 먹여서 파란색으로 변하는지 뻗어 죽는지 살펴보는 겁니다. 이게 신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이처럼 테러리스트 색출 요원이 되고자 하는 세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사회 속 개인, 신과 인간의 관계를 숙고하게 하고, 사회의 악, 자유, 평화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2. 관객을 향한 질문

 

  테러리스트 요원이 되는 K7 목걸이를 향한 예정된 세 단계의 시험이 세 주인공의 삶과 철학을 이해하는 장치였다면, 동점자 선별을 위해 추가로 설정된 마지막 단계의 시험은 관객을 향한 시험이다. 앞서의 시험에서 카시우스의 지시에 따르던 ‘인간’(이미지 분)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고용주의 차림으로 등장한다. ‘인간’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출입구 너머의 한 사람에 대해 설명한다. 그 사람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테러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은 이 사람에 대한 세 경쟁자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그의 물음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그 사람은 진짜 아무 것도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 사람을 건드린다면,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건드린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암울한 그의 비전을 정당화해 주는 거 아닌가요? 만약 우리가 법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와 뭐가 다른 겁니까? 그 사람이 권리가 없다면 우리들의 권리, 모든 사람들의 권리, 민주주의도 위험에 처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싸웁니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들이 죽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에 세 주인공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존존은 명령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머뭇거리다가 오딘과 함께 그 사람을 공격하기로 한다. 반면, 이마누엘은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그 사람의 권리도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격에 반대한다.

이 작품의 결말은 ‘인간’의 지시에 의해 오딘과 존존이 이마누엘을 공격하고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매우 암울하다. 이 작품의 제목 <영원한 평화>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참고로 했고, 개 이마누엘이 칸트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마누엘의 피살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마누엘을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난감하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과 관련하여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영원한 평화>의 바탕이 된 칸트의 논문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서문 첫 줄에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유래를 밝히고 있는데, 묘지가 그려진 네델란드의 어느 여관집 간판에 새겨져 있는 풍자적인 표제였다는 것이다. 간판에 이 말과 함께 묘지가 그려진 이유는, 당시에는 영원한 평화라는 것이 죽은 다음에야 얻어진다고 생각되었고, 이 말을 주로 묘지의 비명으로 자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말의 유래를 감안할 때, 영원한 평화를 이상으로 품고 있는 이마누엘이 죽는 결말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물론 칸트 자신이 죽음 이후에만 영원한 평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가 당장 달성되기는 어려운 하나의 이상이긴 하지만, 경험적으로 실행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명령이기 때문에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칸트는 국가들이 서로서로 도덕적 관계 속에서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인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개발한다면 언젠가는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이마누엘의 죽음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이 작품의 결말을 작가의 주장으로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도발적인 결말은 극적 긴장을 위한 장치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원한 평화’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묻는 질문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의 시험은 전쟁과 테러와 불신이 만연한 사회를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3. 조화로운 연기와 연출

 

  김동현은 화려하면서도 밝은 분위기의 <다윈의 거북이> 때와 달리 어둡고 진중한 분위기로 <영원한 평화>를 연출했다. 금속성의 장치와 어둡고 푸른 조명이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완전한 침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랄한 아카펠라 음악이 사용되어 가라앉는 기분을 끌어 올렸고, 아름다운 오페라 아리아가 작품의 우아함을 더해 주었다. 세 주인공의 연기는 어느 작품에서보다 탁월했다. 오딘 역의 정선철 배우는 <벌>에서 보았던 편안한 느낌과 달리 매우 치밀하게 냉소적인 성격과 이중적인 면모를 잘 소화해 냈고, <숨 쉬러 나가다>에서 눈 여겨 본 이종무 배우는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철학자 이마누엘의 역할을 무리 없이 연기했다. 김종태 배우는 존존의 역할에 맞는 체격과 연기로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에서 보다 진전된 기량을 발휘했다. 백익남 배우의 카시우스 역은 주어진 연기 폭이 크지 않아 연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의상이 독특하여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유일한 인간 역의 이미지 배우는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연기하며 유일한 여자로서 작품의 균형을 맞춰 주었다. 다섯 명의 출연 배우 모두 큰 편차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 점에서 만족스런 작품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간’의 역할이 마지막 단계의 시험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급격히 달라지는데 이 전환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반부에서 인간은 특별한 대사 없이 작업복 차림으로 카시우스의 시중을 들고 시험을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후반부에서는 정장을 입고 고용주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강한 어조로 이마누엘을 추궁하고 존존과 오딘으로 하여금 이마누엘를 죽이도록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탓에 전반부의 ‘인간’과 후반부의 ‘인간’이 같은 인물인지, 인간의 태도와 역할이 의도적으로 달라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희곡에서 ‘인간’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지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반부에 매우 강한 어조로 장황하게 연설하듯 연기하는 ‘인간’역에 왜 여배우를 선택했는지 의문이 남았다. 강한 어조 역시 연출자의 지시일 것이다. 여배우를 선택했으면서도 그토록 강한 톤의 연기를 지시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의 템포는 매우 빨라진다. 템포 탓인지 이마누엘의 죽음은 더욱 더 당황스럽고 납득하기 어려웠다. 전반부의 풍부한 상상력과 재미가 증발되고 ‘인간’의 추궁에 쫓겨 성급히 죽음으로 결말을 맺은 후반부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4. 철학은 연극과 통한다

 

  후안 마요르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철학자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철학자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참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철학적 주인공을 내세워 철학적인 물음으로 안내하고 있다. 평화, 정의, 폭력에 대해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철학자에 의한, 철학을 위한, 철학적 연극의 모범을 보여준 뛰어난 작품이다. 철학을 전공한 필자에게는 뜻 깊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철학적 연극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철학적 연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은 연극과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사고에 몸을 입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에 덧붙여 필자는 연극과 철학은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작가들이 사고에 몸을 입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 작품으로 만들듯이 위대한 철학자 또한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추상적인 사고를 발전시켜왔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칭송받는 소크라테스는 철학 이론서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 철학함을 보여주었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은 철학함의 대본이자 철학사 최대의 작품이었다. 이처럼 철학과 연극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잘 통하는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이다.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1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1

별점 제목 글쓴이 등록일
twitter facebook 회원님이 사용하시는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으로 먼저 로그인 하시면 동시에 기대평을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