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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자 2012-02-02(목) ~ 2012-02-26(일)
공연장소 선돌극장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 3시,7시 / 일 4시 (월 쉼)
관람등급 만 13세 이상
출연자 박완규(크레온) 박윤정(안티고네) 서진(에우리디케) 유성진(감시병) 김현중(하이몬) 김경회(이스매네) 김원진(시종) 정훈(경호원) 민병욱(음유시인) 유명훈(테이레시아스) 홍기용,김란희,박미란,이반석(시민)
티켓가격 25,000원
러닝타임 90분
제작 주최: 극단 백수광부 / 주관: 선돌극장
공연문의 02-814-1678
홈페이지 http://baeksukwangbu.cyworld.com
할인정보 *안티고네 잔여공연 전회차 매진* 준조기(30%,공연15일전까지) 청소년(30%,본인에한함) 대학생(20%,본인에한함) 국가유공자-장애인(50%,동반1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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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상식의 비극적 충돌, 21세기 <안티고네>

법과 상식의 비극적 충돌, 21세기 <안티고네>

최고 관리자 / 2012-04-12 / 조회수 5782

법과 상식의 비극적 충돌, 21세기 <안티고네>

 

오세곤

 

작품명: 소포클레스 원작, 김승철 재구성/연출 <안티고네>

공연일시: 2012.02.02-26

관람일시: 2012.02.04. 오후 7

장소: 선돌극장

 

소포클레스는 생전에 130편의 희곡을 썼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해지는 것은 일곱 편뿐이다. 그 중 <오이디푸스><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그리고 <안티고네>는 삼부작이라 할 만큼 긴밀하게 연결된다. 물론 소포클레스는 선배 작가 아이스킬로스와 달리 비극의 형식으로 삼부작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세 작품만 본다면 그런 이야기는 별 근거가 없어 보인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은 오이디푸스가 통치자로서 테바이에 닥친 여러 재앙의 원인을 밝히던 중 그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적인 죄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자신을 처벌하고 자신을 추방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렇게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고 그 죄인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 아이러니는 <오이디푸스>를 최고의 비극으로 만드는 극작법이라 하겠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떠나 방랑하던 오이디푸스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안티고네의 손을 지팡이 삼아 여기저기 떠돌던 그는 신의 예정대로 콜로노스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운명은 여전히 그를 압박하여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또한 두 아들을 저주하도록 한다. 이후 이 끔찍한 저주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물론이다.

<안티고네>는 바로 그 저주가 실현된 직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장남이지만 동생 에테오클레스에 의해 축출된 폴리네케이스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테바이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둘 다 죽고 만다. 결국 오이디푸스가 물러난 후 그랬던 것처럼 이오카스테의 동생인 크레온이 다시 권력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는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애국자로서 최고의 예우를 갖춘 장례를 치러주지만 폴리네케이스에게는 장례는 고사하고 애도나 매장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혈육의 시신이 들판에 버려진 채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될 운명에 처해진 상황에서 동생 안티고네는 그것이 신의 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신의 법이란 인간의 도리이자 상식이라 할 수 있다. 즉 명문화된 법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되는,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른바 법 중의 법이라 하겠다.

크레온의 준엄한 법을 어기고 오빠를 묻어준 안티고네. 자신이 공표한 법에 의해 오이디푸스의 딸을 처형해야 하는 크레온. 마치 오이디푸스가 그랬던 것처럼 크레온도 스스로 물러설 수 없는 공언을 해버린 셈이다. 그러나 왕도 인간이다. 즉 신이 아닌 인간의 법이므로 틀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수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크레온은 그렇게 하지 못 한다. 안티고네의 강력한 항변에도, 안티고네의 연인인 아들 하이몬의 절규에도 결코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안티고네는 자살하고 하이몬도 자살한다. 이어 아들의 죽음에 절망한 왕비 에우리디케마저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 역시 어리석은 자존심의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마는 셈이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크레온을 부당한 강자로, 안티고네를 정의로운 약자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를 위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크레온의 고민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현대로 오면서는 어느 한 쪽의 옳고 그름보다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논리를 부각시키는 식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백수광부는 창단 15년을 넘긴 연극계 중견 극단이다. ‘실험연극 공동체를 표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늘 독특하고 창의적인 해석을 추구하여서, 특히 창단 초기 안톤 체홉의 작품을 재해석한 일련의 공연은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이번 김승철 연출의 <안티고네>도 비록 소포클레스를 원작자로 명시하고는 있지만 재구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사실이다.

무대는 중앙에 마치 씨름이나 격투기를 연상시키려는 듯 바닥에 모래를 깐 사각 철장을 설치하여 객석을 양분하여 놓았다. 극이 시작될 때 앞뒤 객석에는 크레온 왕과 에우리디케 왕비가 각기 시종(경호원)과 시녀를 대동한 채 앉아 있다. 이중 왕은 이내 일어나 무대로 내려오지만 왕비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크레온이 떠난 뒤에도 빈자리는 계속 남아 있으며, 또 같은 쪽 객석 한 구석에는 실제 배우가 분장한 인간 조각상을 공중에 걸어 놓았는데, 관객 머리 위에서 미동도 없이 무대를 내려다보는 그 조각상의 존재는 공연 내내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렇게 객석을 양분한 철장의 좌우는 코러스의 공간이다. 시민이나 감시병, 음유시인 등의 타이틀로 등장하는 그들은 대사 외에, 집단 움직임이나 피아노, , 구음 등, 다양한 음악적 수단들을 활용하여 극중 코러스의 임무를 수행한다. 때로는 사건을 진행시키고 때로는 극에 필요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들의 존재는 이른바 연극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다.

원래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삼일치의 법칙에 맞추기 위하여 짧은 시간과 한정된 장소에 모든 사건을 모아놓으니 밀도가 높을 것은 당연하겠지만 진행되는 사건만으로는 전혀 쉬어가는 부분이 없다. 그런데 백수광부의 <안티고네>는 그 사건마저 최소화시키고 있다. 크레온의 포고를 전단지 형태로 객석에 뿌리는 등의 사전 퍼포먼스 후 첫 시작이 안티고네가 체포되어 끌려오는 장면이다. 원작과 비교할 때 앞의 3분의 1 정도를 단 한 장면으로 처리한 셈이다.

물론 압축은 통상 절제와 함께 연극 작품에 시적인 힘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압축과 절제에 고저, 장단, 강약, 완급으로 이루어지는 가락(멜로디)과 박자(리듬)와 속도(템포), 즉 음악성이 동반될 때 비로소 시다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안티고네>가 여러 가지 음악적 수단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수단들이 시적인 힘을 형성하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세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 하면 필요한 요소들이 모두 있다 하여도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백수광부의 <안티고네>가 채택한 음악적 수단들은 시적인 힘 내지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곧바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중요한 것은 여러 요소들 사이의 조화이다. 이에 있어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강렬하다. 사각의 링을 방불케 하는 무대와 공중에 띄워놓은 인간조각상도 강렬하고, 크레온(박완규 분)과 안티고네(박윤정 분)가 토해 놓는 대사와 몸짓도 강렬하며, 경호원(정훈 분)의 움직임과 손에 든 현대식 무기도 위압적으로 강렬하다. 물론 이와 달리 코러스의 음악적 행위들은 때로 부드럽기도 하며, 에우리디케(서진 분)가 읊는 신화 이야기는 우아하면서도 감미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두 성격이 조화를 이루려면 그 존재감이 비슷해야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강렬한 요소들에 비해 부드러운 요소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약하다. 더욱이 코러스도 강렬한 소리와 동작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으며, 에우리디케 또한 가슴을 피로 적신 채 죽어가는 모습의 시각적 효과는 강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튼튼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를 채우는 것은 이 작품의 커다란 덕목이다. 그 정도의 강도와 밀도를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렇게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는 배우는 실제로 별로 많지 않다. 그렇게 볼 때 이번 작품이 보여준 박완규(크레온 역)와 박윤정(안티고네 역)의 대결은 훌륭한 연기 조합의 예로 기록될 만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열연은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배우들이 유지하는 높은 강도와 밀도 때문이든,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내용의 과중한 무게 때문이든,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나 요소들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인데, 이미 여러 번 강조한 음악성 차원에서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한 마디로 이 작품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엄청난 에너지가 서로 충돌하며 내뿜는 그 열기는 당연히 관객들에게 커다란 봉사를 한다. 그러나 강한 것도 반복되다 보면 무디어지거나 피곤해지는 것이 인간의 감각이다. 그래서 이른바 강약의 조화가 필요한데 만 부각되고 의 존재가 미미할 때 그것을 보완하겠다고 을 약화시키고 을 강화시키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차이가 없어져 조화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두 배우의 대결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저 따라만 갈 뿐 스스로 생각하지는 못 한다. 강렬하게 부딪치는 두 힘에 압도되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앞서의 여백은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절실하다. 즉 강렬한 요소로 분류되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결에서 일정 정도 생각하며 쉬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최근 영화 <도가니><부러진 화살>로 촉발된, 법에 대한 뜨거운 논란을 생각할 때, 국가 통치를 위하여 실정법을 내세우는 크레온과 인간의 도리 내지 신의 법을 주장하는 안티고네 사이에서 결코 어느 쪽이 옳다고 속단할 수 없는 팽팽한 논리적 토론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는 오로지 그 둘이 강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 즉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질 뿐 관객들로서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연극은 시와 음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압축과 절제도 필요하고, 고저, 장단, 강약, 완급을 토대로 하는 가락과 박자, 속도감도 필요하다. 따라서 작가건 연출이건 연극을 만드는 이들은 마치 시를 짓듯, 노래를 작곡하듯, 여러 요소들을 알맞게 구성하고 배치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양만 많아서도 좋은 게 아니고 강도만 높아서도 좋은 게 아니다. 많은 양을 강도 높게 제시했을 때 관객들은 이성적으로는 많은 봉사를 받았다고 여기면서도 왠지 피곤하고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예술로서든 상품으로서든 연극 작품이 최상의 상태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다.

극단 백수광부가 무대에 올린 소포클레스 원작, 김승철 재구성 연출의 <안티고네>는 여러 훌륭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요소들은 아직까지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뭔가 꽉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조바심도 떨쳐버리고, 혹시 약하면 전달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털어버리고, 과감하게 여백을 설정하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워낙 가능성이 큰 양질의 재료들이므로 분명 성공적인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단체보다도 강한 실험 정신으로 창단 15년을 넘긴 극단 백수광부가,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자극하는, 그래서 재미와 감동은 물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정한 반응까지 촉발시키는, 명실상부한 21세기형 <안티고네>를 선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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