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귀환에 대한 갈망 - <리턴 투 햄릿>
최고 관리자 / 2012-04-26 / 조회수 7880
진정한 귀환에 대한 갈망
- 연극 <리턴 투 햄릿>-
백소연
리턴 투 <매직타임>
당황스럽게도, 장진은 4년 만에 <리턴 투 햄릿>(장진 작/연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2011년 12월 29일-2012년 4월 8일)을 들고 대학로에 귀환하였다. 1998년, 제임스 셔먼(James Sherman)의 작품을 번안으로 처음 선보였던 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리고 생각이 없던’ 그 시절의 과오를 반성한 바 있다. 원작 <매직타임>에서 ‘햄릿을 공연한 배우들의 이야기’라는 구성의 극히 일부만을 발췌했을 뿐인데, 그 시절 번안이라는 오명(誤名)을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3년 후, 작가의 새로운 자각에 힘입어 이 작품은 다시금 <리턴 투 햄릿>이라는 창작극으로 재탄생 하게 되었다. 특별한 사전 정보 없이 신작이라고 멋대로 오해한 채 객석에서 경험해야 했던 기시감의 정체는, 결국 이러한 사실 관계를 뒤늦게 확인하고 나서야 풀 수 있는 것이었다.
시대가 변하였는데도 바꿀 게 없는 상황이어서 슬프다는 장진의 변 그대로, <리턴 투 햄릿>과 과거의 극본 사이에서 다른 그림을 단번에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된 극장의 규모와 소품으로 등장하는 아이패드, 대사에서 거론되는 최근 스타들의 이름 외에는. 물론 초연 당시부터 연극계에서 널리 인정받았던 작품성과 대중성이, 그렇다고 이 시점에 와서 새삼 무용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건너 왔음에도 관객의 시선을 휘어잡는 그 힘은 여전히 유효해 보였다.
감당하기 어렵지 않은 수위의 현실 비판, 극단적 신파로 치닫기 전에 걸리는 적절한 제동력,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재기 발랄한 수다, 현실과 상상의 자유로운 월경(越境)이 만들어내는 공간 운용의 감각. 장진 연극 특유의 이와 같은 미덕들은 <리턴 투 햄릿>에서 또 한 번 어김없이 재현된다. 연극이 재미없으면 오지 말래도 다 온다는 극중 인물의 대사가 결코 장진 혼자만의 만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관객에게로 가는 길
<리턴 투 햄릿>은 분장실을 배경으로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햄릿’이라는 작품이 지닌 대표성을 환기해 본다면, 연극계의 불안한 이면이 분장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설정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불합리한 세태에 대한 분노와 한탄은 미적 거리감이 조절되지 못한 채, 극중 인물의 입을 빌어 다소 거칠게 발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최소한의 의욕과 자존감마저 위협하는 생계의 문제, 스타 마케팅에 대한 절대적 의존, 무분별하게 뿌려지는 초대권, 관객의 철저한 외면 등, 한국 연극계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구체적 지적은 각 상황마다 뼈아프게 녹아들어 있다.
물론 이러한 기본 설정이, 비단 연극계 종사자에게 국한된 특수한 경험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극중 배우들이 무대를 놓고 벌이는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그것과도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뚜렷한 잡음, 눅눅하고 초라한 일상이 만들어내는 수치감과 불안감은 희극적 상황과 수다스러운 재담 사이를 가로질러 뻐근한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벌이를 위해 아동극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진우가 급히 분장을 지우던 중, 후배의 핀잔을 듣고 멈칫 하던 장면은 무척이나 서글프게 다가왔다. 미처 지워내지 못한 얼굴의 얼룩처럼, 무대 이면의 비루하기 짝이 없는 배우의 일상은 진우 역을 맡은 김원해의 능숙한 연기를 통해 깊이 있게 표현되고 있었다. 연극판을 지켜온 재영이 TV 스타가 된 민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배우를 포기하고 무대 감독이 된 이연이 자신도 모르게 과거 무대 위에서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던 대목 역시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묵직한 현실을 가벼이 가로지를 수 있는 힘이야말로 장진 연극이 지닌 가장 뚜렷한 매력일 것이다. 몇몇 배우들의 미숙한 연기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도식과 이연을 비롯한 인물들 사이의 가벼운 티격거림이나 각종 말장난들, 상상에 따라 분장실에서 즉석으로 재현되는 민과 소희의 결혼식 장면 등은 심란한 극중 상황과 관계없이 관객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투리를 버리지 못해 타박을 받던 도식이 제안한 마당극 <햄릿>은 이 연극에서의 가장 기발한 발상을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분장실 안에서 즉석으로 꾸며진 이 극중극은 해설자가 된 도식의 유려한 사설과 더불어 인물들의 능청 맞은 사투리 연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정극 <햄릿>에서의 주요 국면들을 재구성해 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수많은 연출가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듯이, 이 역시 또 다른 <햄릿>의 탄생을 예고한다. 더구나 이 우스꽝스러운 극중극은 난해함을 무기로 관객과의 소통 자체를 경시하는 일련의 연극에 대한 반발을 전제함으로써, 연극에서의 대중성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종래와 다른 형태로 <햄릿>을 구상하는 과정들은 그들이 속한 무대라는 삶의 조건을 자기 연민과 자학의 차원으로 격하하지 않고, 나름의 돌파구를 경쾌하게 모색해 낸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동시에 극중극의 배면에 존재하는 전제, 관객이 연극에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이 다소 위험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관객과의 소통, 대중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모든 연극이 안고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과 탐색의 과정이 늘상 소극적(笑劇的) 재미로만 귀결될 수는 없다. 관객을 위해 알기 쉽게 풀어냈다는 <햄릿>의 마당극 버전은, 결과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원전이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문제의식을 삭제해 낸 채 구성진 사투리에 의존한 웃음 유발, 그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처럼 마당극으로 고안된 극중극 등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세심하게 고려된 것과 달리, 결말부에 이르러 이루어진 급박한 마무리는 상대적으로 무척 엉성하게만 보였다. 극도로 대립하던 민과 재영이 급작스럽게 마음을 터놓고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공연 직전 갑자기 날아든 두 개의 소식-진우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지욱의 아내가 죽음을 맞는다는 것도 지나치게 신파적이며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는 <리턴 투 햄릿>이 가진 치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새로운 상상력의 귀환지
그럼에도 역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장진의 귀환은 그저 반갑다. 이러저러한 한계들에도 그의 연극은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며, 그 즐거움을 통해 다시금 관객과의 소통을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장진의 신작이라고만 믿고 공연장을 찾았던 스스로의 아둔함이 못내 억울하여 몇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장미를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똑같이 향기롭듯이, 번안극이든 창작극이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명명하든, 사실 작품에 대한 최종적 평가와 감상이 그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라는 기본 설정 역시 제임스 셔먼의 <매직타임>만이 지니는 기가 막히게 독창적인 부분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분명, <리턴 투 햄릿>은 ‘햄릿’이라는 특정 공연을 위한 분장실,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일상과 고민이라는 핵심적 아이디어를 <매직타임>에서 취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에서 <매직타임>이라는 작품의 고유성과 독창성이 일정 정도 감지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수많은 문화 생산물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의식적․무의식적 영향과 표절의 관계가 복잡히 얽히는 세태에서, 원작에 대한 약간의 빚짐을 ‘번안’이라는 다소 과한 말로 책임지는 것이 작가 개인으로서는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빚짐을, 스스로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조금 더 결벽증을 보일 필요도 있다. 설령, 장진 스스로 <리턴 투 햄릿>을 <매직타임>의 번안작으로 과하게 겸손히 명명했다 하여도, ‘햄릿을 공연한 배우들의 이야기’라는 최소한의 틀 안에 그가 촘촘히 채워 넣은 특유의 개성과 독창성은 그만의 것으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번안극을 창작극으로 정정하기를 굳이 고집해야 했다면, 그 사이 13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조금은 감안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모두가 체감하는 연극계의 현실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깊어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극과 연극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고민의 넓이와 깊이가 극본 안에 조금이라도 반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 결코 잊지 못했다고 말하는 대학로로 다시금 ‘리턴’한 장진이, 진정 귀환해야할 곳은 새로이 일궈낸 상상력의 무대일 것이다. 이제 그에게 보다 어울리는 귀환지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기를 감히 갈망해 본다. 애타는 관객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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