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여행한다는 것 - <인디아 블로그>
최고 관리자 / 2012-04-26 / 조회수 8071
연극을 여행한다는 것
양근애
공연명 : <인디아블로그>
극작 : 플레이위드(공동창작)
연출 : 박선희
출연 : 박동욱, 전석호
제작 : 극단 연우무대
공연기간 : 2011.12.08.-2012.05.20.
공연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2관
배낭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낯선 이국의 풍경에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도 외롭지 않은 일인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떠난 여행이 가져다 준 상상 이상의 경험들을 말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부질없는 짓인지를. <인디아 블로그>는 여행을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실제로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행기간 동안 배우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꺼내놓았다. 기다림이 일상인 ‘인디아 타임’ 속에서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들이 다닌 여행지의 꾸밈없는 풍경도 영상에 담았다. 디우의 바다, 자이살메르의 거리, 타지마할에 숨겨진 사랑, 쿠리 사막의 쏟아지는 별들, 바나라시의 축제. 여행의 기록은 그렇게 무대 위에 도착한다.
여행을 담은 연극이 계속될수록 그들은 서서히 연극이라는 또 다른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관객들도 함께 하는 여행이다. 이 여행, 어딘가 낯설고도 친근하다. 무대 위에서 낯선 여행지에서 본 것 같은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기억의 포스팅, 여행지라는 플롯
여행지에서의 첫 기억은 아마도 낯선 풍경에 대한 시선으로 시작될 것이다. 호기심 어린 시선은 볼거리에 대한 기대치와 상관없이 풍경을 대하는 여행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설렘을 담은 여행자의 눈빛,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려 있겠다는 신호이다. 극장에 온 관객들의 눈빛은 그런 여행자의 눈빛을 닮았다. 관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훑어보고 극장의 분위기를 살피고 배우를 바라본다.
무대 위에 두 배우가 나와 있다. 극장 로비에서 인도식 밀크티 짜이를 나눠주던 혁진(전석호 分)이 인도 이야기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인도 여행 가보셨어요?” 찬영(박동욱 分)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관객들은 이 연극-여행이 어디로 흘러갈지 상상하며 그들을 바라본다. 사람이 풍경 속으로 걸어가듯 관객은 무대 위의 인도 여행에 초대된다. 배우들은 무대 언어의 힘을 빼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관객과 가까워지고 관객들은 구경꾼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한다.
<인디아 블로그>는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인도 여행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남겨놓는 흔적이기도 하다. 특히 여행의 기억을 포스팅하는 블로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찍은 사진, 여행 정보, 소소한 느낌 등 알록달록한 기록들로 가득하다. <인디아 블로그>는 인도 여행에 관한 기억을 그렇게 한 장 한 장 포착해서 보여준다. 한 달이 넘는 여행 기간 동안 인도의 기차 안, 게스트하우스, 바닷가 등지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 끝에 탄생한 에피소드들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개인적인 기억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록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의 포스팅은 여정과 함께 자연스럽게 극의 플롯이 된다. 디우에서 자이살메르로, 쿠리에서 타지마할로 혹은 바라나시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이 극을 지탱하는 자기장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사건 중심이 아니라 기억 중심의 이동이야말로 이 연극을 여행하게 하는 안내서이다.
기억은 시간의 불가역성을 뛰어넘는 유일한 통로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산다. 지나온 시간에 주름을 만들고 경험에 무늬를 만드는 것도 다름 아닌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봉인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가. 어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서 문장을 쓰는가.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서사의 플롯이 된다.
인도라는 뭔가 특별해보이고 정신적인 공간에서 그들은 잃어버린 사랑과 다해버린 사랑을 떠올린다. 여행이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은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갓 삼십대에 진입한 청년들이다. 실제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사랑에 대한 기억들은 누구나 경험할 법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솔직한 감정들은 그래서 관객들에게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혁진이 인도의 하늘을 묘사하려다 “하늘이 정말… 그 … 하늘색”이라고 말할 때 이 연극의 묘미가 드러나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다. 심각해질 필요도 애써 감정을 절제할 필요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우리들이다.
여행지가 플롯이 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우리가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한다. 객석이 바다가 될 때, 관객들이 인도 현지인이 되거나 갠지스 강의 흐름이 될 때 우리는 다른 내가 되기 위해 최소한의 내가 되어야 하는 여행의 역설을 경험한다. 즉흥과 우연으로 플롯을 초과하는 장면이 반가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 경험으로
무대 위에는 인도를 연상할 수 있는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짜이의 맛이 채 가시지 않았고 은은한 아로마 향도 느껴진다. 인도 음악이 연주되고 공간이 이동될 때마다 스크린에는 인도에서 찍은 영상이 펼쳐진다. 두 배우는 무대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이렇게 오감이 다 살아 있는 이 연극의 활기는 연극에서 비-언어가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언어로 옮길 수 없는 빛과 소리와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기실 연극을 연극답게 만드는 핵심일 수 있다. 언어는 고정되어 있지만 공연의 생생함은 매회 연극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반복되는 여행이 매번 새로울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연성은 바로 관객을 활용하는 것이다. 초연 이후 필링 2관으로 무대를 옮겨 오면서 극장측에서는 객석을 과감하게 잘라내어 통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객과 무대의 경계가 조금 헐거워졌다. 그 틈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배우는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 배우들은 공연마다 도입부를 다르게 연기하기도 한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그들도 달라진다. 혁진의 여자친구인 ‘성은’ 역도 매번 다른 관객이 맡게 된다. 현지에서 만난 다른 여행객들도 디아(dia)가 움직이는 갠지스 강도 관객들의 몫이다.
연극은 대표적인 ‘인간 매체’이다. 이것은 배우의 몸이 얼마나 중요한 미디어인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인디아 블로그>에서 배우의 역할은 주어진 캐릭터 이상이고 블로그 이상의 미디어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여장을 하기도 하고 현지인으로 변해 어눌한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변환은 무대가 바다로 기차로 버스로 사막으로 변하는 것만큼 이색적이고 즐겁다. 그들은 경쾌하고 유연한 태도로 객석을 열게 한다. 두 배우 사이의 호흡과 믿음이 무대 공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돌발적인 상황이 자주 등장해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 상황을 잘 운용할 줄 안다. 찬영이 여자 친구가 죽었다고 혁진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의 핸드폰이 울리자 ‘아직도 그 전화소리가 기억이 나, 진짜 전화 자주 했었는데’ 하는 식이다. 길을 잃었을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매회 연극은 유일한 어떤 것이 된다.
사실 언어는 그 자체로 감정을 유발하지 못한다. 말의 상황이 만들어 내는 농담, 탄식 나아가 리듬, 의미, 구조가 발생하는 장소는 바로 배우의 신체이다. 그것은 가장 육체적인 감각 속에 존재하는 우리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것을 ‘최소한의 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나를 바깥에 두고 온 ‘지금-여기’에서 감각하는 신체로서의 관객이 된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인도 여행기를 들으러 와서 결국 자신의 경험을 투사한다. 물론 연극을 보는 내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새 마음과 몸을 열고 연극을 여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의 나를 통과해가는 처음 보는 풍경을 껴안으면서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찬영은 “거긴 어때? 멋있어?”라는 혁진의 물음에 “가봐”라고 대답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자 배우와 관객의 경험의 자리가 생겨난다. 다 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틈입하는 경험의 자리.
여행과 연극, ‘사이’의 우리들
두 배우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전석호에게는 소년 같은 장난기가 있는 혁진이, 박동욱에게는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찬영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캐릭터에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서 처음엔 본인의 이름을 쓸까 고민했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그랬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어쩌면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간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여기서 배우의 존재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투영시킨 캐릭터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는 없다는 것. 전석호와 혁진 사이, 박동욱과 찬영 사이.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방이 막힌 극장 공간이 여행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거기에는 상상력이라는 작용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무대와 인간을 확장시킨다. 그럴듯한 사진보다 직접 가서 찍어온 거친 영상이 더 실감나는 이유는 우리가 현실과 무대라는 영역을 분리된 공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대의 환상은 우리의 상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연극의 역사는 무대의 환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탐색으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이 연극만의 답은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여행지가 바라나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혁진은 바라나시를 ‘이상하게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도시’라고 묘사한다. ‘탄생 가트’에서 ‘버닝(화장) 가트’까지 백여 개의 가트를 한꺼번에 바라보고 있다 보면 누구라도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생의 축도 같은 그 곳에서는 언어를 넘어 언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라나시가 배낭여행의 종착역인 이유는, 거기가 여행이라는 ‘움직임’의 이유를 묻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여행을 하지만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눈치 채기 힘들 수 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결코 이전의 나와 같지 않다. 여행을 가본 사람은 나 자신이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사이에 머무는 그 느낌에 대해 알 것이다.
쿠리 사막의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잠이 든 밤과 어머니의 강 갠지스에 디아를 띄워놓고 소원을 비는 저녁은 이 연극-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관객들이 가장 스스로 열려 있는 순간도 이때이다.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기억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눕는다. 강물처럼 디아를 옆자리의 관객에게 옮겨주면서 사람들은 모두 소원을 빈다. 여행지의 밤이 깊어갈수록 이미 사라진 것들에게 ‘오랜만이야’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깊어지는 것이다.
연극을 여행한다는 것. <인디아 블로그>는 현실과 극적 환영 사이, 무대와 객석 사이에 머무는 우리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객석에 가만히 앉아서 기억을 타고 상상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인지, 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 연극을 여행하는 사람은 나 자신과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사이에서 흔들흔들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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