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다시 만나다” 속 <소년이 그랬다>
최고 관리자 / 2012-04-12 / 조회수 5107
<이야기판> “청소년, 다시 만나다” 속 「소년이 그랬다. 」
이 연 심(경기상업고등학교, 편집위원) * <이야기판> “청소년, 다시 만나다”는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청소년을 하나의 정당한 사회문화적 주체로 재조명하고자 문화예술과 학술세미나를 결합하여 만든 자리였다. 그리고 이야기판이 끝난 후 작품 「소년이 그랬다」가 ‘공개 시연’되었다. 이 글은 그 공개 시연에 대한 글이며, ‘본 공연’은 이 글의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음을 이리 밝혀 둔다. 필자가 굳이 24일 공개되는 ‘본 공연’이 아닌 19일에 미리 공개리허설로 진행하는 ‘공개 시연’을 고집한 이유는, ‘선생님과 함께 보는 연극’과 ‘선생님과 함께 읽는 리뷰’를 시도해 보고자 함이었으며, 공연이 끝난 후 공연관계자들과 관객이 토론하는 자리를 청소년 학생들에게도 보여 줌으로써, 그런 자리에서 현재의 청소년인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공연기간 : 2011. 11. 24 - 12. 4 관 람 일 : 2011. 11. 19. <이야기판> 공개리허설 원 작 : THE STONES 원 작 가 : 톰라이코스 & 스테포 난쑤 예술감독 : 손진책, 예술교육감독 : 최영애 각 색 : 한현주 연 출 : 남인우, 협력연출 : 유홍영 극 단 : 국립극단『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장 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소년이 그랬다」는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주관하고, <가믄장 아기>, <사천가>로 주목을 받은 남인우가 연출한 작품으로, 원작 「THE STONES」를 여러 번의 회의와 연구를 거쳐 한국의 상황에 맞게 한현주가 각색을 맡아서, 인터렉티브(interactive) /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창작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인터렉티브(interactive) /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창작과정이란 ‘인터렉티브(interactive-쌍방향의) /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 공동작업)’을 핵심 컨셉트로 개작의 과정을 거치고, 연구소 내 예술교육팀과 문화예술팀, 극작가, 연출가, 관객이자 실질적인 공동창작의 주체인 청소년집단(5개 그룹 167명)의 토론과 시연과정을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처음 느껴지는 것이 “지금은 공사 중”이란 느낌이다. 낙상을 방지하기위해 설치한 안전가드를 잡고 객석까지 찾아들어가는 것도 위태위태하다. 한편에는 ‘안전제일’이 크게 붙어 있고 수직으로 뻗어있는 철제 프레임과 날것의 냄새가 역력한 벌거벗은 송판은 아직은 미완의 성장 중인 청소년과 닮아 있다. ‘지금은 공사 중’이 ‘지금은 성장 중’으로 되뇌어지는 이유는 무한한 가능성과 불안정성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로 나눠진 객석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그 가운데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 같은 중앙무대가 있다. 이 길을 민재와 상식으로 분한 두 배우가 시종일관 속도감을 갖고 뛰어다닌다. 어디선가 돌멩이 소리가 나고, 민재와 상식은 별 이유 없이 어슬렁거리고 거침없이 뛰어다니다가 허위로 음식을 시키고, 노숙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다 이전에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던 짜장면 배달부의 오토바이(줄무늬 애마) 열쇠를 훔친다. 상식이가 예전에 살던 재개발 예정지는 학교, 학원, 수학 등에서 탈출한 두 소년에겐 아지트, 즉, “쇼생크”가 되어 주었고, 게임방은 자유가 되어 주기도 한다. 육교 위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던 두 소년은 폭주를 뛰던 줄무늬 애마를 향해 돌은 던지기 시작한다. 사건의 시작이다. 두 소년이 던진 돌멩이는 지나가던 트럭운전사의 머리에 의도하지 않게 맞았고, 트럭은 곤두박질쳐 교통사고가 나면서 운전사가 사망한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저 재미삼아 던진 돌이 사람을 죽였다. 관객의 머릿속에는 지난 9월 광주 풍암동 아파트 벽돌투척사건이 오버랩된다. 광주의 모 초등학생 5학년(11세) 등 3명이 아파트 옥상 16층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중태에 빠졌던 40대 여성이 끝내 숨져 주위를 놀라게 했던 사건이다. 불구속 입건한 학생들은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촉법소년’으로, 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인터넷이 한동안 뜨거웠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두 소년은 두 선후배 형사(정도와 광해)로 1인 2역으로 분하여 쉴 틈 없이 배역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단지 트레이닝복 지퍼를 올렸다 내릴 뿐인데, 형사가 되었다가 순식간에 소년들이 되는 1인 2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목 끝까지 올려 잠근 지퍼는 안 그래도 숨이 턱에 찼는데 답답함을 더한다. 진짜 ‘탈출하고 싶겠다.’ 싶다. 살면서 처음으로 겪게 되는 그 엄청난 상황에 두 소년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불안에 떨며 갈등을 겪게 되고, 이들을 바라보는 법과 사회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 어른 세계를 대표하는 두 형사는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놓고 첨예한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묻는다. “ 돌에 맞아 죽은 운전자가 너의 아빠라면?” “14살 난 딸이 <돌을 던져 사람을 죽였어, 아빠!> 라고 말한다면?” 인터넷상에서 광주 벽돌투척사건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것처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배심원이 되길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손을 들 수 없다. 객석을 마주보게 만들어 놓은 연출가의 의도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어느 쪽에 손을 들어야 하는지 곤혹스러워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아하! 하나의 연극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라는 것, 맞은편에 앉은 또 다른 나(청소년)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거울보기’를 시도해 보라는 것, 여기에 또 하나의 연출의도가 있다. 이야기판 “청소년, 다시 만나다”에서 시작되어, 공연 「소년이 그랬다」까지 이어지는 청소년 정체성에 대한 재조명은, 사회나 어른들의 시각에서 ‘청소년을 다시보자’는 의미와 더불어 청소년이 ‘청소년 스스로를 다시 보자’는 의미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한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학생이 얘기한다. “유죄냐, 무죄냐는 청소년인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일을 저지른다.” 그렇다. 유무죄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 모른다. 이미 결론은 소년법에 나와 있으니 말이다. “범법소년(14세이상 19세미만의 형사책임능력자)과 촉법소년(10세 이상 4세 미만의 형사책임무능력자)은 형법상 행사책임무능력자로서 형사처벌을 하지 못하나 소년법에 의하여 촉법소년은 보호처분 할 수 있고, 10세미만의 범법소년은 아직 어려서 아무런 법적 규제를 하지 않으므로 당해 소년과 보호자를 훈계하는 방법밖에 없다.” 심리가 있는 날 민재는 부모와 함께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나타났고, 상식이는 몸뻬 바지를 입은 홀어머니가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가난은 또 유죄다. 상식이는 단기보호관찰 1년! 민재는 선도 강의 80시간! 두 소년은 단순히 소년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다시 한 번 자유의 “ 쇼생크”를 외친다. 그들 앞에 사망한 운전자의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 잠깐…… 씁쓸하다. 사건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연 사건당사자인 두 소년에게 관심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죄책감이나 후회 또는 반성? 아니면 소년원? 이제 형식상 자유의 몸이 된 두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한 지상파 방송사 고발 프로그램 중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던 10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차피 처벌 못하잖아! 처벌할 수 있으면 해 봐!”라고 말하던 소년의 모습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죄를 짓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은 스스로 자신이 죄를 지어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만들어진 촉법은 소년들이 촉법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도 안전할 수 있도록 사회적, 법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일까? 공연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또 돌멩이 소리가 들린다. 민재와 상식이는 진정 ‘안전’한 곳에서 또 다시 뜀박질할 수 있을까? 무대 전면에 붙어 있던 “안전제일”이 더 크게 보인다. 남인우 연출은 처음 원작을 접하면서 이 연극을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성인들은 청소년들의 의미 있는 실험을 위해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소년극「소년이 그랬다」는 부모와 자녀가, 교사와 학생이,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같이 앉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후 반드시 함께 이야기하는 연극이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이 작품의 공연장을 각 학교 강당으로 옮겨 좀 더 많은 청소년들과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이 법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 또 사회는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흔들리는 정체성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심코 저지른 장난이 엄청난 범법행위가 될 수 있음을, ‘준법’으로 친숙한 법은 때론 ‘범법’으로 가까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되길 바란다. 또, 어른들(사회)에게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 진위(眞僞)나 의도(義徒)와는 상관없이 다르게 비춰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어른들이 듣기에 거북한 청소년들의 은어가 청소년들 사이에선 친밀감의 표현인 것처럼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두 집단 사이의 소통의 문제는 단순히 한 집단의 이해나 노력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공연이 시작되면서 시종일관 달리고 또 달린다. 숨이 턱에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런데 내내 심각하다. 관객의 피로도가 걱정된다. 그런 관객을 위로해 줄 웃음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 상대가 집중력이 짧은 학생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이 연극의 Running-Time은 길다. 공개 시연 공연인 탓에 영상이나 기타 비주얼 테크닉이 첨가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김문성, 김정훈)의 열연과 뛰는 심장의 비트를 닮은 라이브 연주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청소년들을 찾아 각 학교 현장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하니 참 고마운 일이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극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혹여 이 연극을 본 청소년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또 다시 돌멩이를 들고 있는 민재와 상식이를 상상하게 될까봐 마음이 무거웠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남인우 연출이 또 다른 연출적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의 연출력을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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