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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 서울연극인대상 전문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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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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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배우의 발성이나 발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 공연이었다. 안정되지 못한 호흡과 소리로 발화하여 내는 말은 의미전달과 정보전달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 극의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었다.이미지 연극이라고 나름 규정을 지었으나 서사가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만, 서커스를 한 희노애락의 배우들은 대사가 없어서인지 안정되어 보이긴 했다. 연극과 서커스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다고 연출이 밝히려면 서커스가 조금 더 참신하거나 서커스의 경지에 오를 정도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해 새로운 양식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보여 아쉽다. 배우가 조금 잘하는 정도의 서커스라면 오히려 극단 이와삼의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차력이 더욱 신선하다 할 수 있을 정도다. 공연을 두시간 동안 보고 이해를 못하는 정도라면 배우의 대사 점검을 다시 해야 할 의무가 있어 보이고, 연출이 연출에 글에 밝힌 박탄코프의 사실적 환상주의와 매칭이 안되는 것 또한 점검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작년 2012년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작품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다고 밖에 평하지 못하겠다.
– 박지연
공연 시작 삼십 분 전이었는데 매표소는 꽤 많은 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평가단이라고 말을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공연시작 5분을 남기고 다시 한 번 문의를 하였더니 그제서야 초대라고 얘기하며 발권을 해주었다. 좌석은 2층 맨끝으로 D구역 5열 66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여러 번 보았지만 2층에서의 관람은 처음이었다. 무대는 시야에서 너무 멀고 배우들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극이 시작되면서 고문은 시작되었다. 배우들의 대사가 전혀 전달이 안되었으며, 표정은 고사하고 어떤 역할의 어떤 이야기로 전개되는지도 파악이 힘들었다. 심히 보고 집중하려 했으나 너무 힘들고 지쳐서 피곤하기까지 했다. 층객석을 의식하지 않은 배우들의 시선은 당연했고, 그렇다면 2층 객석은 불필요하며 관객들에게 돈을 주고 내놓아서도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니면, 관객이 많을 때 무료관객들에게 그냥 내어주는 형식적인 좌석이란 말인가? 더불어 이점은 극장의 환경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고 배우들의 역량과 성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게 보아서 더는 평가라고 의견을 쓴다는 것이 무의미 할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 평가단에게는 어느 정도의 관람을 유용하게 배려해주셔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실 수 있을텐데. 좋은 평가를 받길 공연단은 원하지 않겠나. 물론, 오늘 같은 경우엔 오히려 2층 맨 뒷좌석의 관객입장을 경험할 수 있어서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러닝타임도 130분으로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연극을 보았다기보다는 멀리 2층에서 기예단 쇼를 내려다보면서 피곤했다는 기억뿐이다. 준비하고 있는 공연과 연습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 시간이었는데 괴로웠다. 앞으로의 평가가 사실상 기대감이 자꾸 떨어진다. 다음엔 차라리 소극장 공연을 관람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 서미영
서사나 연기보다는 무대 장치와 조명, 서커스 연기와 기타 볼거리가 풍성한 공연이었다. 큰 무대에서 20명이 넘는 배우들이 동시에 움직이며 말을 해서 누가 말하는지, 어떤 행위가 중심인지 놓치는 때가 있을 정도였다. 신선하고 멋진 장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연극의 중심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한국사회와 노숙자 문제를 다루겠다는 취지와 관련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은 훌륭하지만, 무대 위에 나타난 모습은 화려한 무대와는 대조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노숙자 문제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상과 자료를 해석하고 통찰하는 인문학적 안목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역량이 뛰어난 스태프들과 연기자가 있다면 차라리 그에 어울리는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뛰기 전에 생각하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 오판진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중 하나인 노숙자-홈리스 문제를 유진 박탄코프의 환상적 사실주의를 이용하여 무대화한 이 작품은 퍼포먼스와 연극의 경계 속에서 방황하는 듯 보인다. 포기한 자인가 실패한 자인가 명확하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커스’라는 환상적인 미션을 제시하여 허무한 그들의 하루하루에 ‘무언가’를 던진다 -그러나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그들에게 어떤 상징적인 것으로 주어지니 모순으로 느껴진다-. 결국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살아남아 무료급식을 받으며 또 살아가고 성공한 자들은 그들을 대신에 죽음 혹은 사라진다 라는 공감할 수 없는 결말을 내린다. 저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홈리스들의 두서 없는 말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했고, 스피커를 통해 크고 또렷하게 들려오는 푸어 플레이 팀의 사회자들의 목소리처럼 피에로들의 뛰어난 재주들은 극의 이야기를 가려 버린 채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져 버렸다.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여 감탄을 자아냈으나 감동은 주지 못했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의해 길을 잃었는데 관객들에게 각자의 해석에 따르면 된다고 하니 2시간 8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란에 혼란만 거듭되었다. 연출의 시도와 긴 시간 동안 연습하고 공연한 배우들의 노고에는 큰 박수를 보낸다.
– 이대희
현실 장면에서의 삶의 질척임, 어두움, 작품의 문제의식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배우들의 노력이 엿보였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공연시간이 2시간이 될 필요가 있는지, 등장인물 수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가 의문이다. 노숙자들에게 자기갱생의 시간이 각각 할애되는데, 두 세 명의 인물을 보고 난 후부터, 저 많은 인물들의 자기갱생 시간을 다 봐야 하는 압박감이 밀려온다. 매우 소모적인 연출이다. 현실과 환상을 잇는 정당성이 모호하다. 환상 장면의 의도는 알겠으나, 1차적으로 환상 장면이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어떤 매개로 인해 현실 장면과 맞닿아 있는지가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듯하다. 날카로운, 시의성 있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과잉, 불필요함, 어수선함은 이 공연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 이주영
전년도 미래야 솟아라 작품상과 연출상을 탄 작품이라 하여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내러티브의 부재. 개연성 없는 구성. 이야기하려는 것과 보여주려는 것이 작위적이고 욕심이 넘치다보니 작품의 정체성 또한 모호했다. 작품 소개에 서커스의 양식을 결합했다고 했는데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는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이질이 동질화 되지 못하고 이질로 겉도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주의 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품의 내러티브와 상관없이 들어오는 퍼포먼스. 그리고 그 퍼포먼스의 수준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국 노래자랑같은 프로에서나 보여주면 적당할 장기자랑 수준에 그친 것도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 했으나 어느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양식에 대한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와 열정, 그 노력들이 좀 세련되고 프로다운 작업과정을 거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보여지며 고로 이 팀에 대한 기대는 유효하다.
– 정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