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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밥 묵고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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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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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창작희곡 인큐베이팅 당선작이며, 2012년 공연예술 창작기금 선정 공연작인 최해주 작, 연출의 "멧밥 묵고가소"를 지난 11월 11일 아르코 예술 소극장에서 봤다. 마지막 공연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님 모시고, 집사람과 함께 셋이서 봤다. 물론 두 자리는 초대로 봤고, 나머지 한 자리는 만원짜리 연극인 우대권으로 관람했다. 90분의 공연시간 동안 난 정말 진지하게 우리 현실의 문제와 직면하게 됐다. 우선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일, 그리고 과연 귀신이 있는걸까? 하는 질문이였다. 한국인들 만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혼과 백의 분리.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수있다는 강렬한 믿음. "멧밥 묵고가소"는 부모님과 할머님 제사를 모시는 찌지리 가난한 둘째의 이야기다. 형은 연극한답시고 집안은 돌보지도 않고, 게다가 교회 다니느라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에서 사는 둘째 (박진수 역)가 임신 4개월의 아내 (박현진 역)와 함께 제사를 지낸다. 형 (차승호 역)은 이런 자신의 입장이 불편해서, 술에 취해 기일날 동생집에 찾아오고, 현실적인 형의 아내 (최솔희 역)는 오직 '주님'만 믿는 이 시대 대표적인 '아줌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정겨워 보였는데, 죽은 아버지 (김재구 역)와 어머니 (이정은 역), 그리고 할머니 (오근영 역) 이렇게 함께 죽은 세 귀신이 멧밥 얻어 먹으려고 이 집에 나타나면서, 형과 동생의 갈등과 싸움이 증폭된다. 우리 시대 북과 남의 투쟁처럼, 여와 야의 그치지 않는 공격처럼, 형과 동생은 주먹다짐까지 한다. 조상을 섬기는 우리의 전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런 문화가 사라져 가는지? 작가이자 연출자인 최해주는 구성지게 잘 풀어 놓았다. 정말 리얼했다. 연기도 뛰어난 앙상블과 개인기를 잘 보여줬지만, 극중의 상황과 대사, 갈등의 요소가 완벽할 정도로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관객도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갈등이 증폭될수록, 정말 그럴듯한 김재구의 내면적 연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졌다. 나 역시 콧등이 시큰해 졌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길러놓고, 돌아가시면, 멧밥이나 한 그릇 얻어 먹고 싶은게 인지상정인데. 그 젯상마저 엎어버리는 경우가 생긴 "멧밥 묵고가소"의 공연은 20년도 훨씬 전에 본 이윤택의 "오구"와 정말 완전히 다른 편에 서 있었다. "오구"가 죽은 사람을 상징화, 의인화해서 한국적 제례의식을 희화화 했다면, "멧밥 묵고가소"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경제적 관점'과 '종교적 혼돈'으로 정교하게 풀어내고 있다. 웃기는 연극인 "오구"와 가슴이 징하게 아픈 연극 "멧밥 묵고가소"는 20년의 차이를 두고, 결국 진화하는 우리 연극의 모습이다.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며,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 공연이 바로 극단 '청맥'의 "멧밥 묵고 가소"이다. 앞으로 극단 '청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13년에도 이 공연이 계속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못 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정말 안타깝다. 불행한 한국인의 과거와 갈등과 투쟁으로 개판이 된 오늘날 한국의 '전통'과 '현실'의 싸움터에 장미빛 미래를 꿈꿀수는 없어도, 관객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둘째아들의 마지막 대사이자 이 연극의 제목인 '멧밥이나 묵고 가소'는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예견하도록 해서 뿌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