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대티기자단
  • 웹진TTIS
  • 메일진

home 매거진 대티기자단

대티기자단

  • 제목 고전은 오늘도 힘차다, 연극의 원형을 찾아가는 <오레스테스 3부작>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3-07-09 조회수 8041


 사람은 언제부터 연극을 보고 즐겼을까?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연극을 서양 연극의 기원으로 잡는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3대 비극 작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신화와 역사가 아직 완전히 분리되지 않던 시기, 최초의 고전이 탄생하던 그 시절의 작품이 올 여름, <게릴라극장 해외극 페스티벌 - 희랍극> 무대에서 오른다. 우리극연구소 설립 20주년 기념작, 연희단거리패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그 첫 번째 막을 여는 작품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지금까지 주로 축약된 버전으로 공연되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1, 2, 3부가 모두 올려진다. 서양 연극의 뿌리 ‘희랍극’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인터미션 포함 장장 4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에 기가 질릴 법도 하지만, 그렇게 보내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기획이다. 공연은 원작의 깊이가 살아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고, 때때로는 코믹하기도 하다.


 
1부 <아가멤논> : 말의 향연을 만끽하자

 트로이 전쟁이 시작한 지 10년.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또한 그 이후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대화, 대화, 그리고 또 대화이다. 현대극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형식이기도 하고, 내용을 잘 모르고 갔다가는 제목을 보면 주인공이다 싶은 오레스테스는 언제 나오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혹은 1부의 제목을 보고 아가멤논을 눈 빠지게 기다릴 수도 있다. 아가멤논은 한참 후에 나온다.) 그러나 물고 물리며 이어지는 대화의 묘미에 한 번 빠져들면 극은 한 시도 지루할 새가 없다. 무대 장치도 소품도 거의 없으며 심지어 인물들의 구체적인 행위도 드물지만, 맛깔 나는 이야기와 치열한 논쟁으로서 ‘말’은 비어 있는 듯한 무대를 허전함 없이 꽉 채운다. 



 이름도 성도 알려주는 법 없이 다짜고짜 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이름 없는 시민들의 정체는 바로 코러스이다. 코러스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있었던 고유한 특징으로, 허구적인 이야기의 공간인 무대와 현실인 객석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코러스는 춤추고 노래하고 음향까지 도맡아 하며 공연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코러스의 대사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정보가 제시되기도 했고, 극 중의 행위를 해설하거나 직접 등장인물들과 대사를 주고받기도 했으며, 무대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을 살려, 공연에서 코러스는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극을 이끌어간다. 때로는 관객을 대변하듯 객석에서 인물을 추궁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행위 없이 인물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극이 진행되는 것은 현대의 관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러나 ‘말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훌륭한 연기 덕에  오고가는 말 속에서 강렬한 드라마가 여실히 드러난다. 클리테메스트라와 아가멤논의 파워 게임과 신들린 카산드라의 예언 등 빛나는 장면은 많았지만, 1부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클리테메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해하고 시뻘건 피를 뒤집어쓰고 도끼를 끌며 나온 대목이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클리테메스트라와 코러스의 복수와 정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관객들의 기를 쏙 빼놓는다.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 제의 속 연극, 연극 속 제의 

 1부를 연 것이 ‘말’이라면, 2부를 시작하는 것은 흰 옷을 차려입고 아가멤논의 제사를 드리는 여인들의 굿이다. 복식과 제사의 절차에서 한국적인 색채가 많이 드러나는데, 코러스의 무창은 제주도 칠머리 당굿 사설조를 차용한 것이다. 1부에서 코러스가 말로서 극에 개입했다면, 2부의 키워드는 제의이다. 코러스는 제의를 통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원수로 부르게 된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 남매의 슬픔을 감싸 안고, 실추된 정의가 다시금 바로 서기를 기원한다. 아버지의 무덤에 술을 바친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인륜을 어기고 복수의 여신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될 지라도,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겠노라 결심한다.



 제의가 연극에서 활용되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독특하게 다가오지만, 연극은 그 기원부터 제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연극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연극이 종교적 제례와 의식에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레스테스의 기구한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 것도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축제인 디오니소스 축제 때였을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루어졌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신에 대한 경배의식뿐만이 아니라 비극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경연대회에서의 13번째이자 마지막 우승 작품이었다.



 2부 전반부의 핵심이 제의였다면, 후반부를 채우는 것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복수극이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하고, 클리테메스트라에게도 칼을 들이댄다. 공연에서 가장 숨 막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극중에서 직접적으로 살해가 이루어지는 장면은 무대 바깥에서 처리되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클리테메스트라의 죽음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목숨을 구걸하던 클리테메스트라가 오레스테스의 칼을 가슴에 맞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넘어 공포를 자아낸다. “당신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고 나는 이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거야.”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잉태하고 만다. 


3부 <자비로운 여신들> : 공론의 장을 여는 연극 한 마당

 어머니를 죽인 죄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는 신탁을 내려 복수를 종용했던 아폴론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남편을 죽인 아내”이냐, “어머니를 죽인 아들”이냐! 복수의 여신들과 오레스테스의 변호인 아폴론이 아테네 여신 앞에서 각자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설전을 벌이게 된다. 1, 2부를 숨 가쁘게 달려온 연극은 3부에서는 색다른 접근법을 택한다. 철없는 젊은이 같은 젊은 신 아폴론과 걸쭉한 입담을 뽐내는 ‘어르신’ 복수의 여신들의 공방은 오레스테스의 딜레마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아폴론과 복수의 여신들은 각자 법정의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배심원으로 상정되는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재판의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들은 오레스테스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재판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수천 년 전 디오니소스 축제 때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을 관람했을 아테네 시민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더욱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신전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의 연극을 구경하고 있는 관객이지만, 자연스레 스스로를 연극 속에서 오레스테스 재판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아테네 시민들과 겹쳐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연극과 현실이 만나고, 신화와 현재가 만나며, 그리하여 연극 속의 도덕과 정의에 관한 난제는 현실 공간의 공동체의 윤리 문제로 치환된다. 연극이 무대를 넘어 사회적 공론장으로 기능하는 순간이다.
 
* * *

 누군가는 고전을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라고 정의했다. 반쯤은 우스갯소리이지만, 그만큼 고전은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낯섦과 어려움을 이겨내면 고전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풍성한 문화적 유산을 선사한다. 현대의 방식으로 재창조되면서도 고전의 무게감을 잃지 않은 <오레스테스 3부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극의 원형을 더듬어간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연극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시대 연극이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글_ 대학로 티켓닷컴 대학생 기자단 3기 박희정 hjpark7902@naver.com
참고서적_ 오레스테스 3부작 프로그램북, 세계 연극사(에드윈 윌슨, 앨빈 골드퍼브 공저, HS Media)
사진제공_ 극단 연희단거리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