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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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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2-10-20
7642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이중주
-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 <귀뚜라미가 온다>
구현경(건국대 박사과정 수료)
관극일시 : 2012.09.13
각색: 장용철 (소설원작: 백가흠)
연출: 박장렬
극단: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
공연 장소: 예술공간 서울
공연 기간: 2012.09.08-2012.09.23
1.
<귀뚜라미가 온다>는 2005년에 발표된 소설가 백가흠의 단편을 각색한 연극이다. 남성의 폭력성과 근친상간적 욕망이라는 도착적 징후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문자언어를 시각언어로 전환함에 있어서 각색자는 극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구체적인 장면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서술이 자유로운 소설과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각화되어야 하는 연극은 많은 변별점을 발생시킨다. 본 연극의 특징은 연극성만을 드러낸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보여준 애매모호하게 처리된 상징적 기호들이 연극의 구체성을 통해서 명확하게 제시됨으로써 소설의 접근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 공간이 많은 텍스트이며 사유의 지속적인 틈입을 발생시킨다. 구멍 뚫린 빈 공간을 관객 개인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텍스트이다.
능도라는 무인도에 바람횟집을 운영하는 살찐 여인과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동거중인 젊은 사내가 있다. 그들의 횟집은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달구분식과 맞닿아 있다. 달구분식에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노총각 달구와 노모가 살고 있다. 밤이면 한 쪽에는 섹스의 교성이 새어나가고 이를 듣는 달구는 노모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바람횟집의 교성이 커질수록 어머니를 향한 달구의 폭력성도 커진다. 상반된 두 풍경은 각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연상시킨다. 살찐 여인은 전어를 구입해 되팔아 돈 벌 생각에 기대로 부풀어 있고 달구 노모는 아들의 학대에 점점 지쳐간다. 이들의 상반된 희망과 절망은 귀뚜라미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에 의해 소멸된다. 태풍으로 인한 해일은 횟집 여자와 노모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해일을 피한 두 남자는 이를 지켜본다.
공연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김기덕의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하위주체들의 일상에 관한 전경화는 백가흠이 지속적으로 견지해오던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은 남성의 폭력성과 섹슈얼리즘이 전부이다. 엄마라고 호명하는 여자와의 섹스와 엄마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은 섹스와 폭력이 동전의 양면 같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또한 엄마와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아버지를 살해한 달구의 행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유사하다. 횟집 여자의 교성이 들릴 때마다 그의 폭력의 강도가 세어지는 것은 엄마를 향한 근친상간적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의 행위가 있음직해 보이는 것은 아들의 욕망에 도화선을 제공하는 것이 옆집 남녀의 무분별한 성행위이며 이는 마치 먹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동물성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들의 성적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타자의 시선인 달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동물성만 지닌 인간들과 그들보다 못한 인간의 억압된 성적 욕망이 향하는 곳은 근친이건 아니건 상징질서의 위반이건 아니건 전혀 개의치 않다.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도 연일 각 매체의 한 귀퉁이에 지속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처해진 환경에 의해 변주되는 인간의 동물성과 실존에 관한 물음은 자연주의와 실존주의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2.
미장센이 중요한 연극이다. 무대정면을 벽돌을 잔뜩 쌓아놓았으며 집이라는 한정된 한 공간을 둘로 구획했다. 무대 한 가운데 전시된 작은 어항 앞에서 전어에 집착하는 횟집 여자의 모습과 달구의 폭력 앞에서 고무 다라이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노모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음습한 분위기를 각각의 소도구를 통해 충실하게 반영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무대공간이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으로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과 소설 텍스트의 공간은 태풍의 눈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제시된다. 극적공간은 하위주체들이 파도에 휩쓸리듯 밀려 온 섬이라는 유폐된 공간이며, 언제 덮칠지 모르는 파도와 해일, 태풍 등으로 시시각각 불안의 전조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지점이 무대공간에서 드러나기 힘들었다. 음향이나 그 이외의 영상 이미지 등도 활용되었다면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 시킬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을 남겼으나 소극장 무대의 현실적 한계 때문이라 여겨진다.
각색이 지닌 어려움은 원작을 접한 수용자와 접하지 않은 수용자라는 두 층위의 관객을 포섭해야 한다는데 있다. 원작과의 비교는 각색된 매체의 태생론적 숙명이다. 각색의 과정에서 소설과 연극이 상동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 소설이 지닌 문학성과 연극이 지닌 연극성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담고 있는 모티프는 복원되어야 한다. 실존의 위기에 놓여있는 극단적인 고립감, 공포, 불안감은 서사를 끌고 가는 중요한 추동력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근친상간애, 섹슈얼리티는 원초적 동물성으로 전경화된다. 태풍인 귀뚜라미를 무대화하면서 배우이자 각색자인 장용철이 귀뚜라미로 분하며 구체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귀뚜라미의 독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갖게 하는 설정은 협소한 무대 환경에서 고안해 낼 수 있는 최적의 의도이며 이색적인 요소로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몰입이 되지 않는 내러티브에 이를 배가시키는 난점이 되기도 했다. 관객이 지닌 개개인의 인식 능력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공연이다.
3.
무대공간이 한정적이어서 배우의 연기가 중요한 극이다. 노모 역을 맡은 권기대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병리적 징후를 내재한 하위주체인 달구역의 배우도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횟집 부부의 연기가 내면화되지 않고 표피적 차원에서 머무르는 듯 했다. 두 배우의 외적 마스크는 소설 속의 배역들과 일치했으며 배우로서의 개성적인 매력을 지녔으나 어색한 사투리가 극의 몰입을 깨트렸다. 귀뚜라미역의 장용철은 극의 시작을 열고 끝을 마무리하는 신적인 위치로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