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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힘 <병신3단로봇>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3-07-08 조회수 8153
SF활극-병신3단로봇

 때는 바야흐로 2013년 5월. 헐리우드에서 날아온 아이언맨이 극장가를 제패하고 있는 이 때, 대학로에는 변신로봇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변신로봇, 아이언맨 같은 빛나는 최첨단 수트는 커녕, V자가 새겨진 은색 조끼와 팔토시 발토시가 변신의 전부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CG 효과도, 대단한 와이어 액션도 없다. 대신 공연 벽두부터 관객들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상상하라!” 관객의 상상을 극대화시키며, 기발한 발상과 재기발랄한 유머로 어느 아버지의 기막힌 변신담을 그리는 이 작품의 제목은 <SF활극-병신3단로봇>이다. 


 평범한 가장 공상철은 어떻게 변신로봇이 되었는가. 거기에는 참으로 SF 활극이나 로봇이라는 거창한 소재와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실 밀착형의 처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 억만장자 CEO 출신에다 천재 공학자다. 우리의 주인공 공상철의 상황은 딱 그 반대다. 회사에서 잘리고 6살짜리 아들을 두고 아내까지 가출하자 상철은 한강다리에 오른다. 자살을 시도하던 그 앞에 나타난 괴상한 장난감 변신로봇 노점상이 사실은 진짜 변신로봇을 연구하는 노박사였고, 얼떨결에 상철은 자신에게 변신로봇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숨겨져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때 전 회사의 왕사장이 상철이 끼친 손해를 보상하라며 10억을 요구하고 상철의 아들 명석을 납치해간다. 상철은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궁극의 3단 변신을 달성해야 하는데, 노박사는 강해지고 싶다면 적을 찾으라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줄거리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형적인 변신로봇 만화의 틀을 기발하게 비틀어 이 시대 가장의 서글픈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최소한의 소품으로 변신로봇을 구현하는 것을 비롯해, 작품 곳곳에서는 만화적이고 B급 영화의 정서도 풍기면서도 현실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요소가 곳곳이 숨겨져 있다. 가령 상철의 최대의 적 왕사장은 ‘야근 펀치’, ‘연봉삭감 킥’, ‘정리해고 빔’이란 공격 기술로 상철을 공격해온다. SF활극이라는 부제에 충실히 극은 에너지 넘치는 액션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액션도 과장된 몸짓과 만화에서 나올 법한 효과음, 비장의 기술로 꾸려져 있어 역동감 넘치면서도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 변신로봇, 어딘가 이상하다. 자고로 정의의 사도라면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을 구해야 하는 상철에게 정의의 사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된 것을 탓하며 카드 홍보 도우미를 때려눕히질 않나, 아내가 가출한 것은 애초에 아내를 소개시켜준 직장 선배 잘못이라며, 정리해고 후 노숙자가 된 장 계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물론 상철이 분노의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카드 홍보 도우미와 장 계장 모두 훌륭한 액션만화 악당으로 거듭나 시원한 액션을 보여주는 탓에, 이러한 전개는 무리 없이 넘어가기는 한다.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상철의 적들은 SF활극에 나오는 대단한 악당이 아닌, 상철 자신과 다르지 않은, 혹은 더 힘들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라는 사실이다. 빚의 굴레와 무한경쟁과 같은 사회적 억압에, 모순된 구조나 부당히 이익을 취하는 ‘진짜 악당’과 맞서 싸우는 대신, 변신로봇 공상철은 자신과 같거나 보다 약한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수평폭력을 휘두른 것은 아니었을까.



 변신로봇 이야기의 서사가 그러하듯이 왕사장의 배후가 밝혀진다. 라스트 보스를 맞은 상철은 노박사가 말했던 진정한 '적'이 결국 자기 스스로였음을 깨닫고, 진정한 변신의 힘을 발휘하여 승리를 거둔다. 평범한 변신로봇 이야기였다면 여기서 멈췄겠지만 <병신3단로봇>은 몇 차례의 반전을 거듭해, 이 모든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가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로봇을 꿈꾸게 되었는가? 평범한 인간으로 하여금 로봇을 꿈꾸게 하는 이 세상은, 변신로봇이 되어 악당을 무찌르지 아니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현실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노박사가 말해준 호접몽이라는 키워드는 겹겹이 싸인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연극이라는 꿈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보게 한다. 지금까지 관객의 상상을 종용하며 최소한의 장비로 변신로봇 이야기를 꾸려가던 연극은 마지막으로 대담한 풍경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변신을 거듭할수록 우스꽝스러운 로봇 장비를 덧입던 상철은 헐벗은 맨몸으로 돌아가 적과 부딪힌다. 맨몸이 자아내는 신체성과 어우러져, 상철의 마지막 액션은 처연하고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마지막 대결은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헛된 꿈에 젖어 주저앉게 하는 ‘공상’과의 싸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공상’이 아니라, 현실을 뒤바꿀 ‘상상’이기 때문이다. 


 ‘변신로봇’ 공상철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5월에 있던 1차 공연을 마치고 키작은 소나무극장으로 장소를 옮겨가 6월 19일부터 7월 28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극장 문을 나섰을 때 허무하게 스러지는 한낱 공상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가져올 동력으로서의 건강한 상상을 이야기하기에 더욱 힘 있는 작품이다. 현실을 뒤집을 유쾌한 상상력을 꼭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글_ 대학로 티켓닷컴 대학생 기자단 3기 박희정 hjpark7902@naver.com
사진제공_ 극발전소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