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대티기자단
  • 웹진TTIS
  • 메일진

home 매거진 대티기자단

대티기자단

  • 제목 당신은 이성을 믿는가 - 극단 하땅세 <파리대왕>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3-06-07 조회수 9197



당신은 이성을 믿는가 - 극단 하땅세 <파리대왕>


 “벌이 꿀을 만들어내듯이 인간은 악을 만들어낸다.” 인간 본질에 내재된 악을 깊이 파고든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의 말이다.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대표작 <파리 대왕>은 무인도에 고립된 어린 소년들이 점차 야만으로 치닫는 모습을 섬뜩하게 묘사하며,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를 그려낸다. 극단 하땅세는 국내 최초로 <파리 대왕>을 연극으로 재현하여, 골딩의 잔혹한 무인도를 무대 위에 형상화한다. 



 핵전쟁의 위험을 피해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려 소년들을 태운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들은 소라고둥을 불어 아이들을 불러 모은 랠프를 대장으로 삼아 모닥불을 피우고 구조를 기다리며 무인도에서의 생활을 꾸려나간다. 어른들이 없는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아이들은 그 나름의 질서와 규율을 지키며 생활해나갔지만, 점차 규칙을 중요시하고 구조될 때까지 생활의 기반을 쌓아가려 하는 랠프와 보다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고 섬을 탐험하려는 잭 사이 의견 충돌이 빚어진다. 한편 아이들 사이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섬의 괴물에 대한 공포가 괴담처럼 퍼져나간다.



아이들이 꾸려나가는 작은 공동체와 그 안의 충돌은 마치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무인도는 문명에서 벗어난 공간이다. 아이들이 건설한 나름의 질서는 얼마지 않아 붕괴된다. <파리 대왕>은 이성이 사라진 곳에 날것 그대로의 야만을 소름끼치게 무대화하고 있다. 원작의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연극이 중점적으로 그려낸 것은 공포다. 삼면을 휘감은 하얀 커튼은 시각적 연출의 핵심이다. 조명과 병용되어 찰랑이는 파도가 되기도, 불타는 숲이 되며, 상상 속의 괴물이 되기도 한다. 커튼은 실체 없는 섬의 공포처럼 아이들을 휘감는다. 



커튼은 효과적인 무대 연출 이상의 존재감을 자아낸다. 커튼이라는 소재가 본래적으로 갖고 있던 어떤 공포는 <파리 대왕>이라는 작품의 핵심과 직접 맞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 어린 시절에 한 번쯤 커튼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떤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일렁이는 커튼 주름은 꼭 귀신이 지나가는 것 같고, 커튼이 쳐질 때 쉬익 하는 소리도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 그 공포는 실체 없는 괴물에 대한 아이들의 공포를 닮았다.



 “그는 슬픔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렸다....그 소년들의 중앙에서 더러운 몸, 지저분한 머리를 보이며 코를 흘리면서 랠프는 상실한 순결과 인간 성품의 야만성, 그리고 피기라는 진실한 친구를 상실한 것을 상기하면서 통곡했다.” (<파리대왕>, 청목) 그 섬에서 소년들은 원시의 야만으로 돌아가 맨 몸에 붉고 푸른 물감을 칠한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목소리는 먹이를 사냥하는 짐승의 괴성으로 변한다. 인간성에 대한 암울하고도 깊이 있는 통찰이 빛나는 <파리 대왕>은 이렇듯 피부에 와 닿는 공포로써 ‘당신을 위한 종말’을 그려낸다.


글_ 대학로티켓닷컴 대학생기자단 3기 박희정 hjpark7902@naver.com
사진제공_ 극단 하땅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