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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곁에 있어도 손에 닿을 수 없는 <달은 오늘도 날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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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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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곁에 있어도 손에 닿을 수 없는
<달은 오늘도 날 내려다본다>
구현경(건국대 박사과정 수료)
극단: 조은컴퍼니
원작: 곤도 히로미츠
연출: 김제훈
상연일시: 2012.06.09.~2012.09.02.
상연장소: 키작은 소나무 가변극장
관극일시 : 2012.08.07
<달은 오늘도 날 내려다본다>는 정의신 작가의 <아시안 스위트>, <겨울 선인장>등을 국내 무대에 선보인 극단 조은컴퍼니의 두 번째 한일문화교류전의 작품이다. 극단 토무(十夢)의 대표이자 원작자인 곤도 히로미츠가 쓴 희곡으로 8월 28일, 오리지널 팀이 내한하여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양국의 문화와 정서를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공연의 특색이다.
막이 오르자 밝은 조명 아래 다다미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좌불안석하는 케이타(안종철)와 그의 주변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유카(이은주)의 모습이 보인다. 아쉽게도 그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그녀의 목소리도, 모습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 곧이어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영매사 레이쥬(문주희)가 등장한다. 며칠 전부터 집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에 불안을 느낀 케이타가 영매사 레이쥬를 초대한 것이다.
케이타는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약혼녀 유카의 영혼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만나게 해준다면 거액의 돈을 건네겠다는 케이타를 보며 초보 영매사 레이쥬는 거짓된 연기로 그의 돈을 갈취하려 든다. 이를 지켜보던 유카는 결국 레이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의 계산도 없는 그들의 사랑에 감동한 레이쥬는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다.
이들의 만남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현실견(現實見)이라는 주술이 필요한데 이는 유카의 49재에 가능하다. 이는 유카가 현실세계에 남는 마지막 날이며 단 10분 간 실재하는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레이쥬의 지시에 따라 케이타와 유카는 만고의 노력을 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얻는다. 갑자기 떠나버린 유카에게 하지 못한 케이타의 말, 그리고 그를 남겨놓고 떠나는 유카가 전하지 못한 말, 그것은 “고맙다”는 한마디였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생전에 나누지 못한 무릎베개를 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여기, 하고 싶은 것을 해주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여자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떠나 보내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지 못해 구천을 맴도는 영혼의 이야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누군가 다 해버렸거나 다 써버렸다. 우리의 고전, 명혼소설 <이생규장전>을 비롯하여 데미 무어를 전세계에 알린 <사랑과 영혼>까지,‘두려운 낯설음’만 상기시키는 죽음이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크로노토프로 변주됨으로써 독자/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동안 한국판‘사랑과 영혼’이라는 외피를 쓴 멜로드라마는 각 매체에서 끊임없이 재연되어온 매력적인 화소이다. 이도 모자라 일본판‘사랑과 영혼’이란 부제를 달고 다시 또 우리를 찾아 온 진부한 연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리한 이야기에 반응한다. 어쩌면 삶이란, 인생이란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흐른다 해도 그다지 다른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는 게 아닐까.
소재의 특이성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연극에는 종전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2시간에 육박하는 다소 긴 시간 동안 관객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화려한 스팩터클의 전시는 부재하지만 한정된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시공간의 이동과 세 배우의 조화로운 연기, 무엇보다도 잘 다듬어진 희곡이 가진 보편성을 반영한 대사가 인상적이다. 케이타의 거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로 복원한다. 무대적 한계성을 뛰어넘은 완성도 높은 연출이라 생각한다. 조명과 대사, 적절한 위치선정을 통해 끊임없는 시공간적 변화를 익숙하게 만든다.
익숙하다 못해 상투적인 소재를 어떤 식으로 낯설게 그려내었을까. 낯섦과 익숙함의 요소는 플롯의 층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진 특유의 일상성, 정서적 층위도 해당된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먼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제아무리 탈영토화, 재영토화하는 세계라 할지라도 A매치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며 일본해는 동해로 표기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행해진 문화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험적인 감정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러한 정서는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익숙함으로 때로는 어색함으로 그들의 일상을 마주하게 한다.
서사의 익숙함을 상쇄하는 낯선 장치는 그와 그녀의‘일’에 있다. 현대인에게 있어 일이란 자기존재의 증명 또는 표현의 욕구로 이해되며 일상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케이타는 휴대폰 회사의 광고를 맡으면서 전전긍긍하는데 그에게는 유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마쳐야 하는 소명이 있다. 그것은 케이타와 유카가 함께 진행한 공동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은 그들의 사랑을 확대, 재생산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케이타는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유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고한다.
“휴대폰의 본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화라는 것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전하고 싶은 것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중 케이타의 대사 中
영상매체의 발달과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인해 현대인들의 시지각(視知覺)이 시각중심주의로 변해버린 지금, 작가는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이 극의 외피는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외연을 넓힌다면 거대담론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목소리를 통한 울림에 대한 재고이다.
케이타와 유카의 만남은 서사의 중핵사건이다. 역경을 통한 성취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부여한다. 때문에 서사의 지연과 서스펜스의 제공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허나 그들의 만남을 지연시키는 전략으로 타인 또는 악인의 개입을 허용치 아니한다. 오직 사랑의 확장, 의지의 강화라는 시각화를 통해 관객을 극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때문에 이 연극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특유의 존재감은 커다란 요소가 된다. 유카는 여귀(女鬼), 즉 혼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이며 케이타는 유카와의 만남을 위해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진정한 남성으로 거듭난다. 이 둘을 이어주는 메신저, 레이쥬는 극 초반에 드러나는 캐릭터를 극적으로 변화시키며 삶의 방향성도 바꾸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처음에 레이쥬가 케이타를 찾아온 이유는 오로지 돈, 그의 돈을 갈취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진심 어린 둘의 사랑을 보며 지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늘 이상을 좇던 옛 애인이 등산 도중 불의의 사고로 죽은 이후 오로지 현실만을 살았던 그에게 케이타와 유카의 사랑은 또 다른 꿈의 시작이자 이상으로의 도약을 보여준다. 헤어진 두 연인의 만남이 레이쥬에게도 의미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극중 레이쥬가 행하는 주술은 기존의 여러 영상과 출판물로부터 흔히 다루어진 부분이기도 하다. 극에서 벌어지는 주술행위는 음향과 조명 그리고 약간의 장치들을 혼합해 흥미롭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한다. 마치 우리네 전통극에서 끊임없이 굿판이 차용되는 것도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눈앞의 현장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경외심와 공포를 환기시키는데 충분하다. 반대로 삶과 죽음의 연계성, 분리불가능성을 역설하기도 하다.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지 않은가. 허나, 무한욕망의 시대는 죽음마저 은폐하기 이른다. 자본주의는 생명연장이라는 주술을 통해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욕망을 부채질하여 죽음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시킨다. 따라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지니. 케이타와 유카가 10분간의 짧은 만남을 통해 행한 말과 행위는 일상에서 무심코 간과하고 지나쳤던 ‘고맙다’는 말과 무릎베개였다. 끊임없이 죽음을 소환하고 환기시키며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데 가장 적합한 매체는 연극일 것이다. 연극의 현장성을 통해서 죽음은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상임을 인지시킨다.
배우들의 연기도 조화롭다. 유카 役의 이은주는 일본여성 특유의 몸짓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소화해서 캐릭터의 매력을 적절히 표현했다. 더불어 레이쥬 役 문주희는 에너지 완급조절이 뛰어난 배우로 흡인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역시 공연 시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케이타와 유카의 직장에 관련된 부분은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 마치 중핵사건처럼 다뤄져 관객의 집중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더불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BGM이다. 원작이 일본인데다 일본 특유의 정서를 이해시키기 위해 극 중간 중간 일본 음악이 삽입되었으나 도중에 갑자기 가요도 나오고 팝이 차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는 문화혼종성(Cultural Hybridity)을 부여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료되지만 관객입장에서는 장면의 유기성을 방해 받을 수 있다. 감정의 지배를 우선하는 1차적 요소가 바로 음향이다. 연극에서 대사 이외의 언어수단으로 회자되는 것도 음향이 가진 감정이입 때문이다. 전술한 점이 보완된다면 <달은 오늘도 나를 내려다본다>는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선사하며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덧붙이자면 이번 공연은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보다 서로가 일상이 된 연인과 부부에게 권하고 싶다. 잊어버리고 지나쳤던 무언가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