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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혹은 HOPELESS에게, 극단 창세의 살아남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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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3-05-02
8934
하루에도 몇 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서울역.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일을 위해, 또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서울역을 스친다. 그러나 번화한 서울역의 음지, 그곳엔 무기력하게 머무른 홈리스들이 있다.
극단 창세의 연극 <살아남은 자들>은 서커스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통해 ‘한국의 노숙인’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하며,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지독한 현실, 그리고 환상이 공존하는 이야기
막이 올라간 무대 위로 객들이 모두 떠난 서울역 홈리스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가진 것이 없음에 분노하듯 사소한 것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서울역이 마치 자신들의 집인 양 낯선 이들에 예민하게 군다. 목적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린 그들은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일 밖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쁨이란 인터뷰를 하러 온 학생들이 가져온 술 한 병과 우연히 주운 장초 하나. 서울역의 홈리스들은 해가 지고 또 뜨기에 살아갈 뿐이다.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의 어느 날 스스로를 <PURE PLAY>팀이라 칭하는 무리가 나타난다. 그들은 홈리스들에게 사물을 통한 한계 극복을 지시하며 갖가지 퍼포먼스를 예시로 보여준다. 홈리스들 중 <PURE PLAY>팀의 기준을 통과하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홈리스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반신반의 하지만, 한 홈리스의 죽음을 겪은 후 필사적으로 연습에 매달린다. 살아있기에 살아갈 뿐이던 이들의 삶에 ‘목표’가 생긴 것이다. 처음엔 각자의 물건으로 혼자 연습하던 분위기가 점차 함께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면서 서울역에는 흡사 축제와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홈리스들은 사물과의 교감,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삶의 아름다움과 함께 공존의 의미에 대해 배워간다.

연극 <살아남은 자들>의 세 가지 관전 포인트!
POINT 1.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
연극 <살아남은 자들>의 배경이 된 서울역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음지와 양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 중 하나다. 백화점과 이어진 세련된 신(新)역사를 거쳐 서울역 광장으로 나오면 상자를 깔고 앉은 홈리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연극은 <PURE PLAY>팀이라는 환상의 존재를 통해 홈리스들을 구제하지만, 구제의 기준으로 ‘공존’과 ‘목적’ 그리고 ‘노력’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노숙인 구제 정책들은 중요한 가치들이 결여된 미봉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공존의 의미’와 함께 ‘우리 이웃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POINT 2. 하나의 연극 속 풍성한 볼거리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 가량 진행되는 연극<살아남은 자들>은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홈리스들의 다툼으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환상의 존재들이 등장해 전통 악기 연주와 창가, 무술 시범, 무용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또한 <PURE PLAY>팀의 전문적인 시범 외에도 사물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홈리스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POINT 3. 상상하는 즐거움공연의 마지막 장면, 선택받은 두 사람을 제외한 홈리스들이 부스스 일어나 무료배식을 받는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상상했던 관객들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상당한 충격이다. 이러한 엔딩은 홈리스들이 <PURE PLAY>팀에게 처절하게 끌려가던 직전 장면과 대비되어 더 큰 반전으로 다가온다.
혹자는 이러한 결말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을 근거로, 선택받은 두 사람이 ‘희생양’이 되어 다른 이들을 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 대신 다른 이를 구해달 부탁하던 두 사람에게 ‘단시간에 모든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며 거절하던 사회자의 단호한 말을 떠올리면 이는 아닌 것 같다.본인은 이러한 결말에 대해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삶의 가치를 깨닫기 전의 무기력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연출이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일종의 열린 결말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연극 <살아남은 자들>을 본 후 한동안 ‘상상병’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느낀 것들을 고맙게’
삶이 무료하다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시간을 내서 연극 <살아남은 자들>을 보러가라고 말하고 싶다. 홈리스들이 미션을 수행하며 발전해가는 모습을 통해 당신이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홈리스들의 죄’가 ‘당신의 죄’는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루의 소중함과 공존의 의미를 잃지는 않았는지.’
‘또 스스로의 가능성을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무대 위 배우들이 Homeless라면, 당신은 Hopeless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럼 당신에게도 반복되는 일상 속 ‘지금 느낀 것들을 고맙게’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다.
글_ 대학로티켓닷컴 대학생 기자단 3기 권하림 nimp0729@naver.com
사진제공_ 극단 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