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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불 좀 꺼주세요>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2-08-21 조회수 8693

불 좀 꺼주세요

 

 

오세곤 (별점: 3.0)

 

작:     이만희

연출:  강영걸

극장:  대학로 정보소극장

공연일시: 20121년 7월 12일~ 9월 9일

관람일시: 2012년 7월 28일

 

 

이만희는 대중의 마음을 잘 아는 작가이다. 어찌 보면 유치한 대사를 과감히 제목으로까지 사용한다. 영화 <약속>의 원작인 <돌아서서 떠나라>의 마지막 대사가 “돌아서서 떠나라.”였던 것처럼 <불좀 꺼주세요>의 마지막 대사는 “불좀 꺼주세요.”이다. 별로 문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사가 두고두고 입과 귀에 맴도는 것을 보면 탁월한 언어 감각이다.

그러나 사실 “불좀 꺼주세요.”는 여자가 오랜 세월 망설였던 남자와의 사랑을 수락한다는 의미이다. 즉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나’와 갈등을 벌였던 내면의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그 지시에 따른다는 어려운 결단의 표출이다. 비록 여섯 글자지만 거기에 수많은 고민이 녹아 있으니, 상당한 문학적 두께를 지닌 의미 있는 표현으로 봐야 한다.

강영걸은 호랑이 같은 연출가다. 나이가 들면서 얼핏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에는 여전히 불같은 예술혼이 이글대고 있다. 그러나 상당 기간 제도권에 길들여지고 나면 그 야성도 꽤 강한 자극을 받아야만 발휘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작품은 강영걸의 야성을 충분히 보여주진 못 했다.

배우들이 좀 더 도발적이었으면 어땠을까? 즉 궁극적으로 연출의 지시를 따르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는 설령 연출과 대립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단히 자기 생각을 제시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작품의 내공을 쌓는 좋은 방법이다.

초연 당시 조연출로 이번에 드라마트루기를 맡은 김태수는 팜플렛에서 “연습이 강영걸 연극학교의 클리닉 과정으로 진행되었다.”고 하였다. 연출과 배우의 만남은 선생과 학생이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대 예술가로 만나는 것이 옳다. 특히 강영걸처럼 야성이 강한 연출에게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배우보다는 도전적이고 때로 함께 격론을 벌이는 동료로서의 배우들이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불좀 꺼주세요>는 1992년부터 외설 시비와 함께, 수년 동안 최다 공연, 최다 관객 등의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물론 그 기록은 당연히 깨졌지만, 이만희라는 작가와 강영걸이라는 연출가가 만나 이룬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현재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1992년이 아니라 2012년의 관객들은 자기들에게 적합한 속도와 밀도를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