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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없는 연극>: 명품 빈티지 보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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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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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없는 연극>: 명품 빈티지 보드빌
백승무
류주연 연출은 꼼꼼하다. 속이 꽉 찬 알배기 굴비 같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다. 그것이 신뢰의 밑천이다. 여유와 재간이 없는 꼼꼼함은 깐깐함으로 몸을 바꾸기 쉽지만 그녀의 꼼꼼함은 간도 맞고 식감도 풍부하기에 편견 없이 즐길 수 있는 일미이다.
일단 원작 프리미엄에 힘입었다고 치자. 보드빌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달콤쌉싸름한 이 명품 텍스트 앞에서 누가 딴죽을 걸 것인가. 구성진 만담에 곳곳에 배치된 익살과 풍자하며, 엉뚱하고 기발한 설정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전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웰빙 식단이다. 그 뿐인가. 20세기 현대철학을 주름잡은 프랑스의 비옥한 지적 토양에서 유기농으로 걷어 올린 그 고농축 단백질은 또 어떤가. 종교, 문학, 예술, 목적론, 결정론, 진화론, 구원,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 유럽과 신대륙의 문명사적 갈등 등 <동물 없는 연극> 속에 녹아든 철학적 베이스는 그 자체로 포만감을 준다. 예술적 청량감과 지적 고상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 무결점 텍스트는 그저 가슴 미어지도록 부러울 뿐이다.
반면 적재적소에 웃음 포인트를 주입하여 텍스트의 신선도를 높이고, 대사 하나하나의 묘미를 살려 산지직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업적은 고스란히 류주연 연출의 몫이다. 배우들의 장단점을 교묘하게 과시-은닉하는 할당의 묘미와 에피소드들의 질감을 무지갯빛으로 채색하는 경영다각화의 전략도 미더움을 준다.
단, ‘박애-평등’ 에피소드에서 형을 과도하게 미화하여 보드빌적 효과를 반감시킨 것, 미술관 에피소드에서 토크쇼式 배치 때문에 적극적 관객 공략에 실패한 점은 옥에 티다. 전자는 <동물 없는 연극>의 본령이 아이러니와 ‘낯설게 하기’에 있다는 점, 즉 박애와 평등이라는 프랑스적 가치가 얼마나 위선적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오류이고, 후자는 지나친 사실적 진행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날카로운 첫 키스 못지않게 몸이 으깨지는 마지막 프렌치키스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