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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을 넘어 피워낸 치유의 꽃 - 극단 민들레의 <꽃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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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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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민들레의 <꽃할머니>는 故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권윤덕 작가의 동명의 그림책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순덕’ 할머니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마임과 대사, 노래로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열세 살에 위안부가 되어 모진 고초를 당하다 가까스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고통스레 살아온 상처와 아픔이 녹아있다. 그러나 <꽃할머니>는 위안부라는 근대사의 상처를 여실히 그려내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우리에게 한 송이 꽃을 건네며 치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노래와 대사, 마임으로 되살아가는 위안부의 삶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는 모든 한국인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무거운 돌 같은 것이다. 일제의 만행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로, 아직까지도 정당한 사죄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보니 관람하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극장의 분위기는 마냥 엄숙하지만은 않았다. 공연을 20분 정도 앞둔 로비는 마치 하얗고 붉은 종이꽃이 만발해 꽃동산처럼 꾸며져 있었다. 로비 한편으로는 관객이 직접 꽃을 만드는 코너가 준비되어 있다. 관객이 만든 꽃은 공연 중 무대 양 옆을 장식하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손수 할머니 영정에 헌화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길놀이▷본 마당▷뒤풀이』 순으로 이어지는 전통 연희의 구성을 빌려온 것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극단 민들레의 연극 미학이 숨어 있다.
작품은 단 네 명의 배우들의 연기로 이루어지며, 무대는 장식 없이 비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일인 다역을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임과 노래, 다양한 소품 활용으로 무대는 결코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컨대 중간 삽입된 노래에 반주를 넣기도 하는 기타는 장면마다 순덕 자매를 실은 흔들리는 뱃전이 되기도 하고, 순덕을 가둔 갇힌 벽이 되기도 한다. 극단 민들레는 이처럼 간단한 소품이나 도구들로 가면을 대신한 연출을 ‘탈을 쓰지 않은 가면극’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이 무시무시한 효과를 발휘하는 때가 순덕이 일본군에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이다. ‘열세 살 어린아이의 아랫도리가 빨갛게, 빨갛게’라는 울부짖는 듯한 노래를 배경으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순덕의 몸짓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거칠고 사실적인 묘사 대신 절제된 움직임과 붉은 손수건을 활용한 암시적 연출은 본 작품의 원작이 위안부 문제를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쓰인 그림책이었던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보게 한다. 맥없이 쓰러진 순덕의 어린 몸 위를 가득 덮은 붉은 손수건은 상징적이면서도 관객들에게 커다란 임팩트를 남긴다.

조국은 무엇인가, 누가 죄인인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궤적은 현대사와 맞물려 음악과 영상, 마임으로 형상화된다. 박정희 정권의 한일수교정상화가 TV로 흘러나오자 순덕은 일본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비명을 지른다. 흥겨운 “Surfin' USA”은 한창이던 아메리칸드림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미국이 한국 근현대사에 남긴 수많은 족적을 서늘한 기분으로 되새기게 한다. “Surfin' USA”를 이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울려 퍼지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무참히 강간당한 베트남 여성들의 고통이 그려진다.
한일수교정상화를 거쳐, 베트남 전쟁을 거쳐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형편이 핀 이후에도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기까지는 수십 년에 걸친 오랜 침묵이 흘러야 했다. <꽃할머니>는 가해자인 일제를 고발하는 한편, 위안부들의 고통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었던 ‘조국’에 문제제기한다. 고생 끝에 성치 못한 정신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순덕은 아무런 피해 보상이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했으며 원래 살던 동래에 돌아가 보아도 사람들은 냉대와 외면, 수군거림으로 순덕의 상처를 헤집어놓을 뿐이다. ‘몹쓸 짓 당한’, ‘더럽혀진’ 여자라는 명목으로 알게 모르게 성폭행 피해자에게 비난과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형편이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 내던져지고 사회의 울타리에서 배제된 순덕의 삶은 일제의 폭력에 대한 분노 외에도 이렇듯 수많은 화두를 우리에게 남긴다.
<꽃할머니>는 가해자에게 죄를 물리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책임을 생각하고,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노를 넘어 새로운 의제를 제시한다. 위안부 문제를 개인의 비극으로 소급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질 짐,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모든 폭력에 항거하는 시작점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그러한 성숙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은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베트남전 한국군의 범죄와 라이따이한 문제를 함께 제시하고, 그 둘이 본질적으로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꽃할머니>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주는 꽃
의지할 곳 없이 늙어가던 순덕은 보호 시설에서 종이꽃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꽃을 만들며 순덕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그 모진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 후 눈을 감는다. ‘꽃은 향기라오/향기는 꽃/꽃을 만지면/꽃이 나를 만지고’. 극을 처음 열었던 노래 가사처럼, 순덕은 꽃을 만지며, 꽃이 되며 삶을 마감한다. 그것은 아픔과 분노를 넘어서 치유하는 힘으로 피어난 꽃이며, 그 향기는 오롯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되어 과거와 현재, 폭력과 책임, 그리고 상처와 치유를 생각게 한다.
공연 전에 고이 접어 만들었던 꽃을 할머니의 영정에 바치며 관객은 극에 직접 동참하고, 또한 스스로 극을 완성시키게 된다. 쓰라린 비극을 그저 거리 두고 지켜보는 입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 땅의 수많은 꽃할머니와 우리가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 연극의 미덕이 있다. 연극은 그 자체로 꽃할머니가 우리에게 건넨 한 송이 꽃이다. 그 향기를 잊지 않고, 할머니의 소원처럼 온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글_ 대학로티켓닷컴 대학생 기자단 3기 박희정 hjpark7902@naver.com
사진제공_ 극단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