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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티기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다는 것, 극단 골목길의 <청춘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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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관리자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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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혹은, 청춘예탄
청년의 나이는 스물둘, 끝나지 않은 방황 탓에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혼한 아내에게 돈을 타다가 술 마시는 일 밖에 하지 않는 사람이다. 청년의 어머니는 남편이 홧김에 뿌린 염산에 눈이 멀었고 현재는 안마사로 일하며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어느 날 청년은 친구의 사촌누나인 ‘간질’이 일하는 다방에서 술을 마시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살자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방황을 마친 청년은 세상으로 나가려하지만 그 결심은 ‘퇴학’이라는 벽에 가로막힌다. 늘 청년을 붙잡아주고, 정의의 중심이 되어주던 선생님은 조르바의 죽음을 선포하며 떠난다.
“이 숨 막히는 나라에서 조르바는 죽었다.”
그리고 세 가족이 살던 좁은 집에는 간질과 청년 사이에서 태어날 새 식구를 위한 야광별이 빛난다.
누군가는 답이 없는 청년의 삶을 관조하며 연민과 함께 위안을 얻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이 공연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절망을 통해 느끼는 비교우위가 아니다. 애초에 연극 <청춘예찬>은 어떤 긍정적인 희망도 없는, 절망 가득한 청년의 삶을 덤덤히 그려낼 뿐이다.
‘행복해라! 넌 그래야지... 젊으니까.’
십오 년을 이어온 극단 골목길의 연극 <청춘예찬> 속에서 청년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공연이 끝난 객석에 남아 무대 한편의 야광별을 바라보며 뒷이야기를 그려보았다. 그러나 막은 내렸고 끝나지 않은 청년의 삶에 가장 가능성 있는 결말은 내 입맛을 씁쓸하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연극 <청춘예찬>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젊음’이다. 곧 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생활은 더욱 힘들어질 테지만 아직 청년은 젊다. 물론 젊다는 것이 행복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청년에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것, 관객들은 그 자체로 청년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품는다.
청춘, 그것이 금세 사그라지는 찰나의 것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