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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씁쓸한 퍼즐 맞추기, 토스카나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2-06-21 조회수 8324

씁쓸한 퍼즐 맞추기

 

백소연 (이화여대 강사)

 

 

공연명 : <토스카나>

작 : 세르지 벨벨(Sergi Belbel)

번역‧드라마터그 : 김선욱

연출 : 서충식

출연 : 정일균, 고서희, 박경옥, 안영주

제작 : 극단 주변인들

공연기간 : 2012.05.04-2012.05.27

공연장소 : 아리랑 아트홀

 

 

어느 날 문득, 반복되는 삶에서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며 알 수 없는 불안과 환멸에 시달리게 되는 순간,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그런 혼란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스페인의 대표적 극작가 세르지 벨벨(Sergi Belbel)의 연극 <토스카나(Enla Toscana)>가 포착해 내는 것은 바로 그 흔들리는 감정과 일상의 모습들이다. 이 작품은 안락한 중산층 가정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오던 부부, 마르크와 조아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에게 급작스레 찾아 온 위기를, 현실과 환영, 또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남편 마르크에게 나타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부인 조아나는, 원인 모를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결혼기념일 선물로 이태리 토스카나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 거란 부부의 예상과 달리, 이후 마르크의 증세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며 둘의 관계 또한 점점 악화되어 간다. 그럼에도 상황을 그렇게 몰아간, 토스카나에서 벌어진 그들 사이의 일은 극 안에서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마르크는 끊임없이 원인 모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환영들은 현실에서의 삶마저 위협한다. 아내는 물론 주변 친구들에 대한 신뢰마저 점차 잃어가는 마르크는 매사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이러한 변화를 납득할 수 없는 조아나는 남편에게 지쳐만 간다.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절친한 친구인 라울과 에바까지 가세하여 도우려 하지만 무엇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결국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결책마저 찾을 수 없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마르크는 조아나와의 이별을 선택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 먼 여행지에 도달해서야, 그는 이제 자신이 평온함을 되찾았으며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자기 고백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시금 그 악몽은 시작된다. 마르크가 비로소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행복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다.

결국 떠난 지 이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뒤늦게 자신의 선택을 되돌려 보려 한다. 하지만 친구인 라울은 불치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내를 불신하게 만들었던 악몽에서의 일들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한 마르크는 죽은 라울의 유언에 힘입어 관계를 되돌리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에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아나에게 토스카나로의 여행을 다시 제안하려 든다. 하지만 토스카나로 돌아온 부부의 마지막 장면은 그것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혹은 현실인지 허구인지조차 모호하게 표현되면서 끝이 난다. 다만 마르크와 조아나 사이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임이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토스카나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진정한 삶과 소통에 대한 열망은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겨진 듯 보인다.

이처럼, 연극 <토스카나>는 인간의 삶과 관계에 대한 본질적 의문과 회의를 부부 관계 안에서 조망해 냄으로써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와 소재가 지니는, 난해하면서도 익숙한 지점들은, 도리어 연극이 취하는 단순한 구성과 진행 방식으로 못내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의 악몽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극단적이며 비논리적으로 그려진다. 물론,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으로 꾸며진 무대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횡단하는 네 배우들의 열연과 현실과의 엄청난 간극이 불러오는 희극적 재미들로 관객의 호응과 웃음을 끌어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무의식의 파편들은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으레 불러올 법한, 뻔히 예상 가능한 상황들을 재현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거나,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불치병을 판정받게 되고, 믿고 있던 아내가 버젓이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해 하며, 그에 분노해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다는 식의, 극 안에서 다루어지는 환영의 내용물들이란 다소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연극 안에서의 이러한 현실과 환상은 대체로 노골적인 장치를 통해 그 경계를 매우 기계적으로 구분해 내고 있었다. 마르크의 악몽이 시작될 때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리며 조명이 깜빡이고 주변 인물들의 말투와 태도는 급변한다.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하여 강조하는 이러한 예고들은, 오히려 의식과 무의식, 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긴장과 의미를 양분하여 단순화 시키고 있었다. “23장의 구성을 19장으로 줄이고 과한 정사 장면을 삭제하고 관객에게 쉽게 이해되게 지나치게 축약한 게 아닌가”라는 연출의 글은, 그래서 원작의 실체가 어떤 것일지 몹시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단서를 추정할 만한 현실적 문제들을 극 안에서 뚜렷이 유추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여행지에서 마르크가 쓰는 편지의 구절들, 일을 위해 투쟁하며 살았으나 인생이 가득 찼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고백만이 그가 느끼는 불안과 절망의 근원을, 아주 보편적이며 상투적인 방식으로 암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작가와 연출의 의도 역시 그러했겠지만, 명백한 이유에서만이 삶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들지 않는 한, 그 단절의 결과는 피상적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연극 전반에 깊은 공감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극 <토스카나>는 납득되지 않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관객들이 다시 짜 맞추어야 하는 흩어진 퍼즐”로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객 스스로 그 퍼즐을 온전히 맞추어 나가기엔 극 안에서 주어진 힌트들은 한없이 빈약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퍼즐을 맞추어 내야 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어렵게 맞추어야 할 퍼즐의 그림이 정작 큰 흥미를 유발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토스카나>에 붙여진 ‘씁쓸한 코미디’라는 부제가, 공연장을 나오는 동안,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