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대티기자단
  • 웹진TTIS
  • 메일진

home 매거진 대티기자단

대티기자단

  • 제목 사라짐 속에 발견하는 존재의 ‘나’<어느 여름날>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3-01-17 조회수 10386
사라짐 속에 발견하는 존재의 ‘나’ 
<어느 여름날>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건물에서 공연하는 ‘2012 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연출가 부문 본 공연’ 그 2번째 이야기인 극단 전망의<어느 여름날>을 취재하게 되었다. 1월 8일부터 10일까지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공연인데 9일에 취재를 하게 되어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고, ‘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의 “요람을 흔들다”에 대한 사전 정보도 전혀 없는 상태라 정신없게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우선 “요람을 흔들다”『“요람을 흔들다 ⅲ”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연극협회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주관하는 2012 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사업의 연출가 부문의 공연입니다. 본 사업은 연중 지속되는 차세대 예술가 교육 프로그램으로, 연출가/희곡작가/안무가 등 3개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연극협회는 이 중 연출가 부문과 희곡 작가 부문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연출가 부문에 선정된 5인의 연출가는 다양한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멘토 선생님의 1대1 지도하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연출가 부문 본 공연은 지난 2011년 초와 2012년 초에 운영된 바 있으며, “요람을 흔들다”라는 부제를 이어갑니다.』 - 요람을 흔들다 사업소개(팜플렛) 으로 미루어 볼 때, 신생 예술인들의 ‘요람’이라는 의미의 교육형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이번 공연인 <어느 여름날>은,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욘 포세의 작품세계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문장의 조각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하게 구두법 없이 쓰인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는 삶의 본질적인 것이 파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리들을 제거한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부분적으로는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적인 심리 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포세는 침묵의 순간들을 적절히 이용한다. 인물들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 사용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물들의 말 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 위키백과 ‘욘 포세’ 소개 중 일부 발췌. 이 연극을 리뷰하면서 원작에 대해서 상세히 조망하는 이유는, 어느 누구든 본 공연을 보려고 하는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공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공연은 지금까지 필자가 보아왔던 어떤 공연보다도 진중하고, 무거우며, 느리지만 섬세하고, 담담하지만 냉철하다. 굳이 이 잡다한 느낌들을 한 단어로 줄이자면 “어렵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극 내용이 집 안과 집 밖을 장소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무대에서 장치의 변화 없이 조명과 음향효과, 배우의 연기만으로 90분 가까운 러닝타임을 이어가는 작품이 이정도의 깊이를 담아낸 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연극 <어느 여름날>은 가디건을 두른 한 중년여인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등장하고, 친구는 그녀에게 ‘왜 계속 창밖을 내다보느냐, 질리지도 않느냐’며 가벼운 타박을 하고, 친구가 집 밖의 여름바다를 구경하러 나간 사이에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놀랍게도 이 작품에서는 단 한 번도 극중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 이유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을 이룬다.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도시에 살기 싫어하는)과 함께 남편이 나고 자란 바닷가의 시골마을의 낡았지만 아름다운, 선착장과 보트까지 딸린 집으로 이사와 살게 된다. 그들은 꿈을 이룬 것이기에 행복에 부풀에 이사하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와 다르게 그녀의 남편은 집에 있는 것을 불안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로 나간다. 그녀는 처음에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친구가 방문하는 날(수 십 년전) 남편이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나가겠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말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결국 남편은 또다시 바다로 나가고, 그녀는 엄청난 불안감과 함께 자신의 불안감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발견하지만 어째서인지 결국 남편을 잡지 못한다. 얼마 후 그녀의 친구가 집으로 도착하고, 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자 친구의 남편도 도착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날씨는 더더욱 나빠지고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이 되었지만 남편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남편은 신고를 함과 동시에 그녀의 남편을 찾으러 나간다. 그렇지만 결국 발견된 것은 텅 비어버린 작은 배 한척. 그렇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수 십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그 집에서 수 십년 전 그대로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스토리상으로는 정말 단순한 스토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스토리 속에 짤막짤막한 작은 사건들과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극중 인물들의 심경의 변화와 이로 인해 발견해 나가는 자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사라짐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어느 여름날>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게 된다.
 
 위에서 이 작품은 “어렵다”라고 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현재의 인물이 과거 상황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 상황에서 주인공(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그녀’)의 심리상태를 직접적으로 독백하듯 이야기함으로써 마치 영화의 ‘회상씬의 나레이션’을 떠오르게 하는 참신한 연출과 특별한 장치와 소품, 격렬한 감정연기 없이 과거를 회상하는 현재 인물의 담담한 독백. 그리고 회상 속의 과거의 인물의 연기가 합쳐져 형식적으로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극의 이해를 돕는 “쉬운”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극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불확실하여 처음부터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만, 언뜻 지루해질 수 있을 정도의 느린 호흡 속에서 한 마디 한 마디의 대사와 인물간의 침묵까지 모두가 극중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해주면서 극이 던지는 물음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도 기존 대학로의 유명 연극들의 빠른 템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의 느린 호흡을 90분 내내 이어가기에.
 
 하지만 그렇기에 필자는 이 작품이 진정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부속품 없이 대사와 배우, 조명과 연출만으로 자칫 난해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극의 핵심을 최대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대사로써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대사 한마디로 열정적인 연기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평소에 진중하고 무거운 연극들을 좋아하지 않거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섣불리 이 작품을 추천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이 작품을 100%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90분이 지난 후 극장을 나오면서 그 대사들과 침묵들, 배우들의 연기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잠시라도 생각에 잠기고 싶다면, 내 존재에 대해 한번쯤 물음을 던져본 사람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든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짧은 기간의 공연에 소극장 공연인데다 평일 오후8시라는 여건에서도 객석이 가득 찼다면, 그 이유를 한번쯤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공연정보


사진제공 <요람을 흔들다> 

글 이상현(대학로티켓 대학생기자단2기, maki_r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