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대티기자단
  • 웹진TTIS
  • 메일진

home 매거진 대티기자단

대티기자단

  • 제목 아아. 이 세상 모든 불쌍한 인간들을 위하여.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3-01-03 조회수 9219
채권자

아아. 이 세상 모든 불쌍한 인간들을 위하여.
 
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 기념 페스티벌 ‘인간이 불쌍하다’의 또 하나 작품으로 연극 <채권자>가 게릴라 극장에 올랐다. 연극 <채권자>는 스트린드베리이 작품 중 <죽음의 춤>보다도 작가 스스로에게 훨씬 자전적인 작품이자, 가장 격렬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연희단거리패가 자신있게 꺼낸 이 연극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인물 관계 설정과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극의 가장 큰 중심 소재는 사실상 ‘부부’이다. 전 남편 구스타프가 전 아내 테클라의 현 남편 아돌프에게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결국 아돌프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구스타프와 아돌프는 마치 작가 스트린드베리이 본인의 삶과 본인이 한 때 추구한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인물과 같다. 즉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도 스트린드베리이를 가장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다.
 
결국 연극 <채권자>의 세 인물은 모두 말 그대로 ‘불쌍한 인간들’이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그들은 저마다 서로의 관계에서 상처와 애증을 떠안고 있다. 현 남편 아돌프는 사실상 아내 테클라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한 채 살아가는 남자로, 낯선 사람인양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찾아온 구스타프로부터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돌프는 아내를 진정 사랑하고 그녀에 대해 한 번도 나쁜 생각을 품지 않은 순수한 남자이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에게로 떠나지 않을까 불안에 떠는 나약한 심성을 가졌다. 전처 테클라의 새로운 결혼생활을 염탐하기 위해 찾아온 구스타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끊임없이 아내에 대해 의심하게 된 아돌프는 결국 아내와 구스타프 간의 대화를 통해 좌절한다. 어찌보면 이 연극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아돌프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돌프에게 스스로 목을 매달게 한 구스타프는 결국 아내 테클라 그녀가 죽은 자신의 남편을 끌어안는 모습을 통해 승리의 기쁨에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결국 그녀로부터 다시 애정을 찾고자 했고 결국 홀연히 집을 나설 수 밖에 없는 구스타프는 안쓰럽기 짝이 없다. 테클라 역시 전 남편 구스타프에 대해 자신이 서술하는 글에 ‘멍청이’로 부르며 조롱하고, 현 남편 아돌프에 대해 훨씬 여유롭고 다소 우월한 위치를 점령하며 스스로 욕구를 충족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모든 애정을 잃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하면서도 어쩌면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것은 ‘사랑’인지 모른다. 가장 환희에 차게 하는 감정인 동시에 저 쓰레기 오물냄새가 지독히 나는 밑바닥까지 제 자신을 끌어 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연극 <채권자>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연극에서 등장 인물들이 안쓰럽고 멍청해보였던 데에는 애초에 그들이 서로의 감정 저변에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그 것이 옳다고 집착했기 때문이다. 아돌프는 항상 테클라에게 외적인 요소에서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항상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생각하고 그 의식이 오히려 아내에 대한 쓸데없는 의심을 증폭시켰다. 구스타프와 테클라 역시 그 감정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 자꾸 제 위치를 확인하려 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도 결국 인간의 본능인 외로움과 타인에게 버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원인일 것이다.
극중 구스타프와 아돌프는 자신들의 아내 테클라에 대해 자신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음탕한 암컷이자 일종의 ‘채권자’라 여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처럼 ‘사랑’과 그 관계 설정에 있어 채권자와 채무자를 따로 둘 수 있는가. 그 것이 아니라 실상 각자가 모두 채권자이자 채무자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가끔 너무 일상 자체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오롯이 단순히 그 감정에 충실하고 집중하며 만족할 수 있다면 과연 비극은 존재할까. 물론 장담은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 것이 무수한 인간들의 삶에서 느끼는 딜레마니까. 무대 위 세 명의 인물은 다소 독특한 성격과 행동 설정으로 훨씬 입체적이었으나 결코 우리들과 먼 존재가 아니었음을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불쌍한 인간들’이다.
 
연극 <채권자>를 통해 스트린드베리이의 희곡에서 유독 빼놓을 수 없는 ‘부부’라는 소재에서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하는 인간들’의 처절함을 보았다면, 페스티벌의 타 공연에서는 작가 스트린드베리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스트린드베리이 페스티벌 ‘인간이 불쌍하다’는 2013년 1월 20일까지 연극, 전시 등을 통해 다양하게 소개될 예정이다.
 
대학로 티켓닷컴 기자단 김누리
kimnuri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