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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이념의 대립 속 기쁨과 슬픔, 그리고 눈물의 하루.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2-10-26 조회수 10716
이념의 대립 속 기쁨과 슬픔, 그리고 눈물의 하루.
 
  한 아이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무 앞에 앉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본다. 
멀리서 총소리가 울리고 아이의 비명소리와 함께 암전이 된다. 
곧이어 조명이 켜지고, 신나는 유랑극단의 노래와 함께 연극이 시작된다.
 
 

  <로풍찬 유랑극장>은 세르비아 작가 류보미르 씨모비치의 명작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을 모티브로 김은성 작가가 재창작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의 세르비아를 배경으로 참혹한 전쟁 중에도 연극을 하기 위해 유랑 길을 떠도는 배우들이 작은 마을에 머물며 그곳의 사람들과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연극의 숭고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김은성 작가는 원작의 내용 중에서 전쟁 중에도 연극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유랑극단의 의미에 주목, 원작의 시공간을 1950년 6월 24일, 한국전쟁 발발 하루 전의 전라남도 보성의 새재마을로 옮겨왔다. 여순반란사건 이후 좌·우 대립이 극심한 상태에서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전개되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는 유랑극단을 통해 전쟁과 인간, 삶과 연극을 돌아보는 우리 이야기로 재창작했다.
 

 
  일명 ‘빨갱이’를 소탕하기 위해 경찰들과 우익청년단원들이 시시때때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낯선 타지인 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는 마을. 처음 로풍찬 유랑극장 단원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경찰들의 검문은 물론 마을사람들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이들은 우익청년단원 중 가장 열성단원이자 일명 ‘피칠갑’이라고 불리는 피창갑이 이미 죽은 시신들을 도륙 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들이 도착한 곳이 전쟁의 한가운데라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된다. 장터여관에 묵으며 여관 주인인 김상랑 부부로부터 마을 상황에 대해 듣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도 연극을 이어나간다. 그들이 선택한 연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일제시대 배경으로 번안한 <노민호와 주인애>. 연극은 대 성공을 거두고, 마을사람들은 물론 경찰들도 눈물을 흘리며 연극을 보게 된다. 연극이 끝나고 마을사람들과 경찰들 모두 마음 속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여흥을 즐기지만, 빨치산 소탕작전이 떨어지고 마을은 총소리에 휩싸인다.
 
 
   객석과 무대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과 관객들의 호흡이 극이 진행될수록 같아진다. 죽창을 들고 피를 뒤집어쓴 창갑이 등장하여 마을사람들을 항해 소리를 지를 때, 관객들 역시 마을사람이 되어 숨죽이며 그를 쳐다보고, 연극이 끝나고 극단 단원들과 마을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흥에 겨워 춤을 출 때 관객 역시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게 된다. 연극 <로풍찬 유람극장>은 좌·우의 대립 상황 속에서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일반 소시민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쁠 때는 기뻐하고, 웃길 때는 웃고, 또, 슬플 때는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에 주인해가 노민호를 따라 자결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눈 대사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아, 사람 목심이 파리목심이당가!”. 같은 마을에서 어렸을 때부터 같이 뛰어놀고, 함께 나눠 먹어가며 자란 친구이자 가족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고, 색출하고, 또 죽이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선택은 동조하거나 미쳐가거나 혹은 술로 세월을 보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회철이 빨치산 색출을 위한 검문이 아닌 그저 경찰 동료의 집에 들렀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창갑이 단미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속에 순수함을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관객들은 이들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의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6·25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이 연극은 관객들과의 호흡을 통해 직접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되도록 만든다. 연극을 보는 동안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아닐까.
  
* 극단 <달나라동백꽃>에서 창작한 이 연극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2012년 10월 11일부터 11월 4일까지 전석 20,000원에 상연하고 있다.

사진제공 <로풍찬 유랑극장> 

글 박선영(대학로티켓 대학생기자단2기, sunyeongsh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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