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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미완의 시, 미완의 봄 - 연극 <878미터의 봄>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2-04-26 조회수 6967

미완의 시, 미완의 봄

 

오세곤

 

작품명: 한현주 작, 류주연 연출 <878미터의 봄>

공연일시: 2012.3.20-4.8

관람일시: 2012.3.24. 오후 3시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거대한 세트. 마치 878미터의 깊이를 온전히 담아 작품 전체를 압도하려는 듯한. 따라서 인간들은 더욱 왜소하다. 그 작은 몸으로 878미터를 헤치고 ‘봄’까지 이르기는 무척 힘들어 보인다. 구불구불 땅 속을 파고들어간 갱도나, 그 갱도를 딛고 선 카지노 도박장이나, 하늘높이 치솟은 타워크레인이나 모두 인간에게는 버겁기 짝이 없는 괴물들이다.

약한 인간들끼리 서로 상처를 낸다.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부짖든 몸부림치든 또는 담담하든 그들의 동작은 모두 슬프다. 서로가 서로의 슬픔을 볼 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또 자신에 대한 연민이 된다. 그렇다. 이 작품에 깔린 것은 근본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다.

막장이라 부르는 검은 색 탄광 위에 세운 휘황찬란한 도박장은 그 자체로 최고의 역설이다. 아무런 조작을 가하지 않아도 그대로 연극에 어울리는 공간임은 물론이다. 여기에 카지노 딜러, 방송국 피디, 경찰관이 모인다. 이들은 모두 광부의 자식들이다. 도박중독으로 폐인이 되어 추한 꼴로 카지노를 떠도는 광부의 존재가 상징하듯 그들은 모두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거기에 부인의 외도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자책하는 사나이까지 합세한다. 이 정도면 연극의 조건은 완벽하다. 그런데 또 있다. 방송국 피디가 끌고 온 타워크레인의 강박관념이다. 그는 고공 농성 중 투신한 노동자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혹시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아니다. 아무리 많아도 정리를 잘 하면 좁은 공간으로도 능히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것을 제대로만 쌓으면 힘은 그 단순 합계가 아니라 마치 핵분열을 하듯 거의 무한정으로 증폭되는 게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다고 무조건 탓하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문제는 요소들의 배치와 정리이다. 우선 무대장치는 분명 한 몫을 한다. 그런데 타워크레인은 크게 힘을 보태지 못 한다. 부인의 죽음에 가책을 느끼는 사나이의 스토리는 그보다는 낫지만 역시 실감이 약하다. 결국 본줄기인 17년 전 광산 사고와 그 상처의 극복마저 그저 설명적인 정도로 약화되고 만다.

여러 요소들의 주파수를 일치시켜 커다란 공명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이르지 못 하고 오히려 서로 부담을 주면서 군더더기 같은 주변 요소와 거기에 힘을 빼앗긴 중심 요소로 분리되고 만 것이다. 이 작품이 많은 극적 재료들을 배치하고도, 또한 나름대로 앙상블을 이루는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저 잔재미 정도를 선사할 뿐 깊고 오래 가는 진한 감동에까지 이르지 못 하는 주된 이유이다.

아래 획을 못 그은 미완의 ‘봄’과 같은 표현이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밀도 높은 시적 상징이 되어 크게 가슴을 치는 그런 연극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