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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코끝이 찡하게 매워서 다시 또 생각나게 하는...
  • 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 2012-06-12 조회수 10846


코끝이 찡하게 매워서 다시 또 생각나게 하는, 연극<짬뽕>


아니 무슨 연극 제목이 <짬뽕>이냐고? 음식을 주제로 하는 연극인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진짜로 음식이 나온다. 자장면도 나오고 가장 중요한 짬뽕도 나온다. 게다가 무대는 대놓고 중국집이다. 이름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냥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것 마냥 촌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춘래원’이다. 봄 춘, 올 래. 그리고 원? 원은 무슨 뜻이지? 잘 모르겠다. 일단 넘어가자. 연극을 보는 관객에게나 지금 이 리뷰를 보는 사람에게도 그리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음식 냄새가 극 초반부터 진동한다. 배우들은 자꾸 무대 위에서 진짜 자장면과 짬뽕을 후루룩 잘도 먹는다. 거 참 치사하게 관객도 사람인데 입 쩝쩝 다시게 하는 연극이다. 물론 운이 좋은 관객 두 명은 극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올라가서 이벤트처럼 진짜 음식을 맛 볼 기회가 있다 그래서 더 열 받는다?! 더 배고파지니까. 날씨도 좋은 토요일 오후 네 시, 한참 배가 출출한 시간에 관람한 연극 <짬뽕>.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여. 글로나마 미리 <짬뽕> 맛 한 번 좀 보시겠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춘래원입니다. 시간이 늦어도 배달 가능합니다!


무대는 1980년대 광주의 한 평범한 중국집.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이 하나 둘 찾아온다. 춘래원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은 삼남매가 꾸려가는 곳이다. 사장이자 주방장인 신작로. 배달을 맡는 신만식, 절름발이이자 주문, 계산과 서빙을 맡는 막내 여동생 신진아. 이 삼남매는 여느 집안과 다르지 않게 가끔씩 싸우기도 하고 잘 어울려 노는 돈독한 형제애를 가진 사이다. 신작로에게는 다방에서 일하는 미란이라는 예쁜 애인이 있는데, 꼬박꼬박 돈을 모아 그녀와 결혼하여 네 가족이 도란도란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춘래원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순이나 자장면값 떼먹고 사라지는 스님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신작로에게는 늘 그랬듯이 한없이 평화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일상은 아주 조그만 사건으로부터 균열이 일어난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영업이 끝날 때, 갑자기 들어온 주문 전화였다. 나름대로 옷 빼입고 고고장을 가려던 만식은 형의 떠밀림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배달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만식은 거리에서 군인 둘을 만난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돈도 주지 않으면서 음식을 놓고 가란다. 당연히 만식은 거부를 했고, 매우 배가 고팠던 군인들은 총까지 겨누면서 음식이 들어있는 철가방을 빼앗으려 했다. 양 측의 실랑이가 계속 되던 중에 군인 한 명이 철가방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철가방을 얻어맞은 군인의 총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발사되었다. 만식은 이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큰 일로 번질지도 모르는 채 춘래원으로 빠르게 돌아온다. 작로와 진아가 보는 TV 뉴스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과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각 언론들의 모습도 TV에서 드러났다. 이 와중에 돌아온 만식은 작로와 진아에게 어이없었던 지난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때, TV에서 속보가 보도되었다. 만식이 겪었던 그 상황이 폭도들이 군인을 공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 간첩들의 짓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사건이 이상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기발한 설정, 웃음으로 무장된 블랙 코미디   

<짬뽕>이 극 초반에는 다소 평범하고 가벼운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연극 <짬뽕>은 엄연히 블랙 코미디다. 시대적 배경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말로 하자면 광주 사태 공간적 배경은 역시 광주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고등학교 시절의 국사 수업을 들으면서, 또는 영화나 TV 브라운관에서 종종 들어본 말일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당시에 대통령 자리에 전두환 씨가 오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벌어진 전국적 규모의 민중 주도의 민주주의 운동이다. 1986년 6월 민주항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상당히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기억인 동시에 뼈아픈 기억이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은 국민과 그 국민들을 지켜야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군대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연극 <짬뽕>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짬뽕 하나, 겨우 음식 때문에 벌어졌다는 기발한 설정으로 하여 당시 상황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주제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은 구수한 사투리와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대화 속의 말장난, 재미있는 상황 설정 등 다양한 요소로 웃음이 끊임없이 유발된다. 처음에 관객들은 마냥 웃는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웃기니까. 하지만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여전히 웃고는 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된다. 웃음을 유발시키는 저 상황이 결코 시간이 지난 지 멀지 않은 시대에 벌어진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식은 간첩이나 폭도로 몰리게 되는 자신에 분노한다.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겪었던 상황을 사실대로 다 털어놓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로는 만식을 말린다. 작로로서는 만식이 경찰서에서 자수해봤자 오히려 맞아 죽기 밖에 더 하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저 쉬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깥 시내 거리에서는 연기가 가득차고 군대와 학생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싸운다. 사람들이 하나 둘 마구 쓰러진다. 결국 상황이 격해진 것이다. 작로는 특수공무원들에게 고문을 당하는 꿈까지 꾸며 불안에 떤다. 미란과의 행복한 결혼생활, 가족들과의 평화롭고 단란한 삶, 자신의 가게 춘래원의 성공 등 언제나 꿈꿔왔던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작로였다.    

   

우리는 이 연극을 통해 신작로로 표방되는 소시민의 꿈이 어떻게 뒤틀린 역사에 의해서 꺾이는지 보여주고 있다. 시작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은 급속도로 커졌고 이제 작로의 꿈이 짓밟힐 지경에 이르렀다. 불안감은 계속 커진다. 신작로뿐만 아니라 당시에 많은 소시민들이 이렇게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의 꿈과 행복한 삶을 단숨에 뿌리째 뽑힐 수 있다는 불안 말이다. 실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점점 격화 되면 될수록 도대체 누구를 위한 운동인지 모를 정도가 된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는 무수히 나타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연극 <짬뽕>은 그 점을 가장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끝은 찡해지고, 입 꼬리는 어색하게 올라가 있고, 그런데 또 보고 싶고 


관객들은 약 1시간 40분 동안 열심히 웃는다. 그러나 극 마지막에는 어느새 웃음은 잦아들어 있었다.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이전과 조금 달랐다. 필자 본인은 이미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또 코끝은 이상하게 찡했다. 내용이 심히 자극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가서 사라질 극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짬뽕>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결국 작로는 춘래원에 찾아온 그 때 만식이 싸웠던 군인 둘을 보게 된다. 군인 두 사람은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작로와 만식이 급히 두 사람을 줄로 몸을 꽁꽁 묶어버린다. 이렇게 상황이 꼬이게 한 그 두 사람에 작로는 총까지 겨누고, 만식이나 진아는 놀란다. 우습게도 이 상황을 마무리 한 것은 혹시 죽을까 무서워하며 구석에 숨어버린 군인인 줄로만 알았던 방위 두 사람이다. 극 중 사건이 발발하게 된 것도 어이없는 이유였는데 그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도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이대로 극은 쉬이 마무리 됐을까? 아니다. 방위들이 군 상층부에 제멋대로 벌인 짓이 아님이 밝혀졌다. 여전히 광주 시내 거리는 가스 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싸우는 소리로 시끄럽다. 상황은 결코 진정되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을 추스른 작로의 앞으로는 곧 시내에 운동하고 있는 학생들과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나눠주러 갔던 미란의 죽음 소식이 날아온다. 만식은 분노하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진아도 만식을 따라 나간다. 어둠 속에서는총 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작로는 차마 춘래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동생들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짬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어떤 시끄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이전의 시간, 단란하게 소풍을 갔던 작로, 미란, 만식, 진아 네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나란히 서서 행복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 순간, 조명은 어두워지고 사진의 테두리는 영정으로 변한다. 작로는 세 사람의 곁에서 사라진다. 그 때부터 작로의 독백은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돈을 모아도 이제 쓸모가 없음을 말하는 작로는 술을 마시며 영정 사진 속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을 한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작로는 끝내 외친다. “이 짬뽕 같은 세상!” 인상적인 것을 뛰어넘어 코끝을 찡하게 만든 이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 같은 장면이다.


실제로는 아니지만 매운 짬뽕을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좀처럼 잊을 수 없고 결국에는 다시 찾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고, 빼앗아갔는가? 누구를 위한 순간이었는가? 우리의 사소한 꿈과 평범한 일상은 온전히 지켜지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짬뽕>은 단순히 역사를 돌아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이라 생각한다.


웃기도록 슬픈, 슬프도록 웃긴 연극을 보고 싶은가? 또 한 번 그 맛이 생각날 정도로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호되게 매운 연극을 보고 싶은가? 그럼 <짬뽕>은 당신에게 가장 적절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누리 대티 대학생 기자단 
kimnuri23@hanmail.net